스탠리 비쉬네브스키가 있었다. 나는 스탠리를 분류하기가 힘들다. 스탠리가 가톨릭일꾼운동에 인연을 맺은 지 이제 27년이 되었다. 그는 우리와 계속 머물것인지 아직도 결심하지 못했다고 슬프게 고백한다. “그러나 도로시 데이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계속 하게 한다”고 그는 선언한다.
스탠리는 우리가 “태중 교우” 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이 때문에 그는 개종한 우리의 급진적인 입장들과 시위, 우리의 평화주의와 무정부주의에 무분별함과 조급함이 있다고 느낀다. 스탠리에게는 리투아니아 배경이 있으며 피의 박해를 받은 내력이 있다. 그는 러시아인들을 미워하지 않지만, 조국이 이웃한 외세에 지배되는 것을 보았던 사람이 가질 만한 회한을 마음에 품고 있다. 이런 태도는 미국의 프로테스탄트 배경을 지닌 우리 개종한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지배하기만 했지 다른 이들에게 종속되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어떻게 운동에 함께 하게 되었는지에 관하여 말해줄 온갖 종류의 이야기들이 있다. 그가 좋아하는 대목은 어느날 유니온 광장에서 내가 무거운 타자기를 질질 끌고 있을 때 나를 만났다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타자기를 갖다 주겠다고 제안했으며 나는 “오세요, 나를 따라 오세요”라고 대답했다고 주장한다. 그 이야기를 할 때, 그는 “그녀는 작고 나이든 여자였고 나는 여성에게 정중한 젊은 남자였으며 데이 여사를 위한 기사”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덧붙이기를, “나는 17살이었고 그녀는 37살이었다”고 한다.
문제의 진실은 이것이다. 스탠리는 처음에 시집 한 권을 가지고 내 사무실에 나타났다. 나는 그가 시인이 아니라고 말해야 했다. 그의 응답은 시들을 내버리고 산문을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는 트렁크 하나만큼의 책들과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으며 많은 이야기들이 출판되었다. 그는 여전히 그의 이름이 인쇄된 책을 희망하고 있다. 스탠리는 우리를 위해서 온갖 종류의 기도카드를 인쇄하며 다량의 용지뿐만 아니라 “올바른 정신” 이라고 하는 2쪽 짜리 소형 신문을 스스로 만든다.
그는 길거리에서 <가톨릭일꾼> 신문을 파는 일부터 시작하였으며 2차 대전까지 그 일을 계속하였다. 그러자 그는 그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유전이었다. 그는 또한 해를 입은 사람들을 보호하고 불의에 대항하기 위해서 전쟁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비록 자신은 양심적인 병역 거부자가 되려고 했지만 말이다. 그는 가톨릭 전쟁 거부자들을 위한 한 캠프에서 4개월간 지낸 후 그것을 포기하였다.
그는 아직도 무기와 흰색 군마의 입장에서 생각하는데, 그러나 나는 실제로 그가 말에 가장 가까이 갔던 것은 전국 비스켓 회사 파업시기의 한 폭동에서 였다고 생각한다. 그 때 나는 공장벽으로 밀어붙여지는 위험 속에 있었는데, 스탠리가 나와 경찰의 말 사이에 그의 몸을 끼어 넣었던 것이다.
스탠리는 몇 사람은 기쁘게 하지만 그 밖의 다른 이들을 화나게 하는 거칠은 유머감각을 지니고 있다. 피정 참석자들이 영적 훈련을 하러 우리 농장에 왔을 때, 스탠리는 “우리는 피정 중에 특별히 하트, 샤프너와 마르크스에 의해서 만들어진 거친 고행자의 겉옷을 빌려준다”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맞이하였다. 그는 더 보수적인 우리의 방문객들에게 “우리는 매주 한 침대에서 다른 침대로 시트를 교환합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한번은 한 그룹의 신학생들이 왔을 때 그의 첫 말이 “오, 우리는 언제나 방이 많이 있어요. 만일 여러분이 미신적이지 않고 한 침대에 13명이 자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면 말입니다”이었다. 그는 “만일 모든 남자들이 그들의 십자가를 졌다면 어떤 여자도 결코 걷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하길 좋아한다.
그는 마루에 다리를 꼰 채 주위에 앉아 있는 어린 아이들에게 긴 이야기들을 말하길 좋아한다. 그가 가장 즐기는 이야기는 “오스왈드, 배고픈 사자” 라는 긴 이야기이다. 그는 1인칭으로 그것을 말하고 수 없이 반복해서 말한다. 그 결과 아이들은 그와 함께 이야기의 몇 부분들을 따라서 한다. 오스왈드가 어떻게 그의 다양한 가족들을 씹어 삼키는지 말하면서 그의 턱이 계속해서 돌아갈 때 아이들의 턱도 반복해서 돌아간다. 이야기가 너무도 재미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의 평화주의에 대한 그의 우정어린 풍자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수년이 걸렸다.
스탠리는 자동차를 운전할 줄 모른다. 그는 어느 곳이든 자전거를 타고 간다. 농장의 한 두 사람이 항상 자전거를 빌리는데 그래서 스탠리도 자전거를 원할 때마다 다시 빌려야 한다. 그는 모임에 참석하진 않지만 프란치스꼬 제 3회 회원이며, 성 프란치스꼬에 대한 방대한 분량의 책들을 갖고 있다.
<빵과 물고기>는 미국 메리놀선교회 출판사인 오르비스에서 1997년에 발간된 Dorothy Day의 <Loaves and Fishes>(빵과 물고기)를 '참사람되어'에서 2000년 3월호에 번역한 것입니다. 도로시 데이가 이 책을 쓴 것은 1963년으로, 가톨릭일꾼공동체 운동이 시작된 지 30년만에 운동의 시작과 일꾼들의 삶을 간결하고도 따뜻하게 회상하고 있으며 운동의 입장과 신앙과의 통합을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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