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엄마가 자녀에게 생색 내면서 밥을 줍니까
상태바
어느 엄마가 자녀에게 생색 내면서 밥을 줍니까
  • 서영남
  • 승인 2022.03.06 21: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민들레국수집은 2003년 4월 1일 문을 열었습니다. 어느새 열아홉 해가 지났습니다. 여섯 명이 앉을 수 있는 간이의자를 놓은 작은 식탁 하나로 시작한 민들레국수집입니다. 2020년 2월부터는 코로나 19 때문에 손님들에게 도시락을 나눠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국물이나마 나누기 위해 천막을 치고 어묵과 커피도 대접하기 시작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는 우리 손님들은 온갖 곳에서 옵니다. 처음에는 민들레국수집 주변과 동인천역 주변의 노숙하는 분들이 우리 VIP 손님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한두 시간 걸어서 오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석바위, 신기촌, 주안, 부평에서까지 차를 타고 올 형편이 안 되는 분들이 힘겹게 걸어서 왔습니다. 그러다가 주안역, 부평역, 부천역에서 노숙하는 분들이 오더니 서울의 영등포역, 용산역, 서울역, 시청역, 을지로역, 청량리역과 의정부에서도 오는 우리 손님들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부산역에서 노숙하는 분이 찾아온 적도 있습니다. 

우리 손님들이 사는 곳도 다양합니다. 자유공원, 화도진공원, 동인천역 지하도, 병원 대기실, 쪽방, 여인숙, 찜질방, 만화방, 계단 밑, 버려진 옷장 속, 헌옷 수집통, 폐가 등 사람이 웅크리고 숨어 있을 수 있는 모든 곳이 잠자리가 됩니다.

민들레국수집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이 열려있습니다. 하루에 두세 번 오셔서 식사해도 괜찮습니다. 어떤 때는 한 시간이나 걸어서 온 손님이 밥을 먹고 사는 곳에 다시 갔다가 저녁을 먹으러 다시 오는 것이 힘들어서 국수집 주변에서 이삼십 분 서성이다가 또 밥을 억지로 먹고 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루에 가장 많이 식사했던 경우는 자그마치 다섯 번이나 정상적으로 먹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은 주 5일 운영합니다. 목요일과 금요일이 쉬는 날입니다. 교도소에 갇혀 있는 형제들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안타깝게도 배고픈 손님이 쉬는 날인 줄 모르고 찾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라면을 끓여드립니다. 짜장면을 사 드리기도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은 운영을 참으로 희한하게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열면서 네 가지만은 지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다. 기부금을 얻기 위한 프로그램을 하지 않는다. 생색내는 돈은 받지 않는다. 조직을 만들지 않는다. 오로지 하느님의 섭리에 의지하면서 착한 개인들이 희생으로 나눠주는 도움으로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산도 없고 내일 일도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참으로 많은 분들이 민들레국수집을 도와줍니다 . 쌀과 반찬거리를 살짝 국수집 앞에 내려놓고 가기도 합니다. 반찬거리를 택배로도 보내주십니다. 온갖 곳에서 온갖 좋은 것들을 아낌없이 나누어줍니다. 그리고 민들레국수집은 연말정산에 필요한 영수증도 발급할 수 없는 곳입니다. 완전히 생돈이 나가는데도 참으로 많은 분들이 조건 없이 그냥 도와줍니다. 희한합니다.

왜 민들레국수집이 정부지원이나 생색내기용 지원은 받지 않으려고 하는가 하면 1933년 미국 뉴욕에서 “환대의 집”을 열고 <가톨릭일꾼> 신문을 내었던 도로시 데이와 피터 모린 때문입니다. 피터 모린은 환대는 개인의 희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정머리 없는 제도화된 자선이 아니라 어루만지는 다정한 손길로 인격적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처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시는 손님들이 얻어먹는 사람이 아니라 한 식구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엄마가 해 주는 음식을 먹는 가족처럼 말입니다. 어느 엄마가 자기 자녀에게 생색을 내면서 밥을 차려 주겠습니까?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l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