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입니다. 노숙하는 우리 손님들은 견디기 참으로 어려운 계절입니다.
HAIM(Heavenly Action In Mission)은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봉사단체입니다. 하임은 아시아의 가난한 이들과 나눔을 하는 단체입니다. 하임으로부터 지난번에 아주 좋은 품질의 침낭을 40개나 지원받았습니다. 거리에서 지내는 우리 손님들이 이 침낭을 선물 받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한 손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 봤더니 아주 좋은 품질의 침낭이라서 참 좋았다고 합니다. 두툼한 침낭 덕분에 아주 잘 잤다면서 고맙다고 합니다. 침낭을 비닐봉지에 넣어 들고 있는 손님도 있습니다. 침낭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으니 신주단지 모시듯 들고 다닙니다. 침낭이 없으면 밤에는 잘 수가 없다고 합니다. 얼어 죽지 않으려면 밤새도록 걸어 다녀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코로나19 때문에 명절에도 손님들에게 도시락꾸러미를 나누었습니다. 지난 1월 1일에는 떡국을 일회용 국그릇에 담아 드렸습니다. 일회용 그릇이라 떡국을 예쁘게 담아도 별로 볼품이 없습니다만 손님들은 참 좋아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노숙하는 우리 손님들은 제대로 국을 먹지 못 합니다. 일반 식당은 방역수칙을 지키면 운영을 할 수 있지만 무료급식을 하는 곳은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무료급식은 거의 도시락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코로나19 전에는 우리 손님들께 떡국은 최소한으로만 대접했습니다. 왜냐하면 노숙하는 우리 손님들은 떡국이라면 질색을 했기 때문입니다. 진하게 우려낸 사골국물에 끓여낸 떡국을 싫어하는 손님을 이해할 수 없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런데 손님들에게 이야기를 듣고는 이해가 되었습니다. 노숙하는 우리 손님들은 설날 전후에는 어느 곳으로 가든지 떡국만 먹게 되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이팝에 고깃국을 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 손님들이 떡국을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경춘 씨는 자전거를 타고 도시락을 받으러 옵니다. 남동구 만수동에서 옵니다. 요리사인데 몇 달 전에 손을 다쳤습니다. 방세도 몇 달이나 밀렸습니다만 쫓겨나지는 않았습니다. 일당을 받고 일하는 요리사인데 멀리 만수동에서 도시락을 가지러 옵니다. 몇 년 전에도 아파서 일을 못 할 때 민들레국수집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손이 거의 나은 것 같습니다. 어제 도시락을 받으면서 잠깐 면담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일자리를 구하러 다녀야 하는데 돈이 한 푼도 없다고 합니다. 오만 원만 빌려달라고 합니다. 오만 구천 원을 주면서 구천 원은 빌려주는 값이라 했습니다. 돈을 갚지 못해도 도시락 가지러 와야 한다는 약속도 받아내었습니다.
우리 손님들은 빈털터리입니다.
'손님, 지금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어요?'
오백 원 동전 하나. 천 원 한 장. 만 원 한 장 있다고 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손님은 돈 한 푼 없다고 합니다. 어떤 손님은 지난 육 개월 동안 천 원 한 장 써 봤다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의 VIP 손님은 대부분이 빈털터리입니다.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손님이 가끔 있습니다. 십몇 년 전과는 달리 일이만 원 정도 빌려달라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면 갚지 못하더라도 밥을 먹으러 오거나 도시락을 받으러 와야 한다는 약속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손님들이 일이만 원의 돈을 갚지 못하면 피해 다니기 일쑤입니다.
피터 모린께서 하신 것처럼 민들레국수집 한 구석에 돈통을 놓아두었습니다. 거기에는 삼천 원 미만의 돈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빌려갔다가 다시 갚으시면 됩니다, 라고 했습니다. 놀랍게도 몇 달이나 돈통이 유지되었습니다. 손님들이 이삼천 원을 빌려갔다가 생기면 되갚고는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아무런 조건 없이 돈을 넣어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새로운 손님들이 몰려오던 어느 날 돈통이 텅텅 비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이번에는 피터 모린께서 한 것처럼 돈통을 놓고 누구든지 자유롭게 쓸 수 있게는 할 수 없지만 우리 손님들을 위한 무이자 소액대출을 다시 시작해야겠습니다. 삼만 원 미만의 금액을 그냥 무이자로 빌려드립니다. 또는 오만 원 미만의 금액을 무이자로 그냥 빌려드립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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