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성월에 그녀를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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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성월에 그녀를 보내다
  • 조기동
  • 승인 2020.11.2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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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동 칼럼

나는 사람을 만나면 나의 가슴과 상처와 영혼을 먼저 보여주면서 상대의 말을 듣고 싶다. 상대방에게 경청과 기도와 도움을 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오늘은 잘 시작했으나 지금은 좀 착잡하다. 아내가 요추 3번이 부러져 30일 동안 입원했다가 퇴원했다. 돌아와서 맞닥뜨린 현실은 쉽지 않다. 

둘이서 이겨낼 것이다. 이겨낸다는 것은 생로병사의 비밀을 쳐부순다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약해지는 육신을 보면서 그래도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누릴 것이라는 것이다. 아내는 다계통 위축증과 유방암이라는 병도 가지고 있다. 

오늘은 2002년 11월 23일 44세에 세상을 떠난 첫 아내 김 양희 글라라의 기일이자 나중에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 정순옥 마리아의 기일이다. 글라라는 그림을 그렸고 나와 회사를 함께했다. 오늘 추모의 뜻으로 그녀와 딸이 있는 그림을 그렸다.그래서 내가 자기를 그렇게 형편없이 그린 것에 대해 무척 화가 나 있을 것이다. 원래 좀 쎈 여자다.

 

그림=조기동
그림=조기동

오늘 병원에서 안셀모 형제님을 만났다. 75세. 아들은 선천적으로 지적 장애가 있고 다리를 쓰지 못한다. 두 분은 지난 해에 세례를 받았다. 부인은 암이다. 안셀모 형제님은 투석을 해야 한다. 우리 인생은 만만하지 않다. 서로 미소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신앙이 위로가 되었다. 새로 시작한 그림이 위로가 될 것이다. 주고 받는 몇마디가 위로가 될 것이다. 

이 밤 다시 김양희 글라라를 추모하고 싶다. 병이다.

11월 23일 그녀가 죽었다. 하느님, 왜? 이제 44살인데... 제발 어떻게 해 보세요, 하느님이시잖아요. 전능하신 분. 자비가 넘치시는 분이잖아요. 입원한지 14일째에 다발성 골수종 첫 항암인데, 성모병원에서 그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의료사고인 것 같다. 점잖은 분이 왜 이러시냐고 간호원이 만류한다. 

그 사람이 죽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사흘전까지 함께 녹차를 마시며 웃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 의사에게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부검을 신청했는데, 처가에서 반대한다. 이미 죽었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부검신청 해지 절차가 복잡하다. 햇살은 눈부시고 사람들은 행복해보인다.

"주님, 아내가 죽었습니다. 이것이 당신의 뜻입니까? 왜? 그녀를 살려만 주신다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남은 생을 바오로처럼 세상을 누비며 선교사로 일하겠습니다. 그녀가 돌아오고 제가 대신 죽으면 안 될까요? 아이들에게는 저보다 그녀가 필요합니다." 하였다. 

둘이 촛불을 켜고 묵주기도를 바쳤던 기억이 떠오른다. 눈물이 방울방울 흘렀고 우리는 흐느꼈다.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저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지만 용서해 주세요. 도와주세요. 둘다 성당 일을 열심히 했고 봉헌도 정성껏 했고 당신에게 진심이었잖아요. 두 아이도 열심히 했고 한 아이는 복사를 서며 예비신학생 모임에 나가고... 애들이 아빠 우리 집보다 더 행복한 집은 없을 거야 그랬었는데..." 

사랑하는 이는 정말 가버렸다. 왜 굳이 계속 살아가야 하는가. 잠에서 깨어나는 일이 힘들었다. 설거지 더미와 수리해야 할 집, 회사일, 새로 이사 온 집은 왜 이리 더럽고 정이 가지 않는 것일까? 먹는 것은 ? 라면과 짜장면은 지겹다. 그러나 살아가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사무실을 군포로 옮겼다.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봐야 하므로. 

왜 햇빛은 빛나고 사람들은 미소 짓는가. 왜 사람들은 행복한데 나만 불행한가. 왜 다 아내가 있는데 나만 없는가. 그녀의 옷가지를 정리하러 온 처제들의 쾌활한 목소리가 낯설었다. “이건 내가 가질래” 떠난 자를 기억할 무언가가 나누어지고 있다. 이사 오기 전에 그녀의 그림과 화병등 많은 것을 버렸다. 이사갈 집은 좁다. 버릴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버려야 한다.

감정기복이 심해졌다. 슬프다가 담담해지고 자유라고 생각하다가 공허해진다.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이 없으면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 넣어야 할지 모르겠다. 벌 받았다는 느낌이 든다. 종교의 영향인가. 상선벌악. 도대체 이런 벌을 받을 정도로 지은 죄는 무엇인가? 이걸 통해 나에게 주는 가르침은 무엇인가? 그녀의 죽음은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았다.

성당 사람들이 우리를 보는 눈도 바뀐다. 가장 부러워하는 집에서 불쌍한 집으로 바뀌었다. 답답하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수리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묵주를 잡고. 오후에는 국선도 체조를 한다. 끝나자마자 닥치는 불안, 걱정, 두려움.

아들이 수원교구 예비신학생 모임에 갔다가 나를 불렀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 엄마 손을 잡고 “꼭 신부님이 되겠어요” 다짐을 하던 아들이다. 이제 더는 예신모임에 다니고 싶지 않단다. 엄마아빠가 원해서 예신모임에 다녔지만, 이젠 아니란다. 알았다. 아들아.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큰 집은 정리하였다. 빚부터 갚아야 한다. 집중해야한다, 회사일과 아이들. 살아야한다. 살아남아야겠다. 살아남고야 말겠다.  그이와는 19년을 함께 살고 그후로 또 18년이 지났다. 그녀의 얼굴이 성모마리아처럼 아름다워지고 그녀의 성격이 성모마리아처럼 착해진 세월이다. 조금씩 기억이 변형되었지만 죽어서도 그녀는 함께 살고 있다.

이 지구별에서 일어나는 생로병사의 비밀을 다 이해하리라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을 노력해서 극복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우리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는 태풍의 눈처럼 고통의 한가운데에 있다. 우리는 고통을 통과하여 거기에 가야한다. 

군포성당에 다니는 이정호 요한은 간경변으로 세상을 떴는데 죽기 전에 성모마리아 일행이 와서 자신의 수액병에 무엇인가를 넣어준다고 했다.그는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내가 죽을 때도 다른 별에서 천사들이 마중나올까. 그렇다면 죽는 게 좋은 일이 될수도 있겠다. 엄마 뱃속에 들어있다가 아름다운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엄마를 만나는 아가처럼, 누에고치를 깨고 나오는 나비처럼, 햇살 찬란한 날 나도 가고 싶다. 모차르트를 들으며.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아직은 아니다. “주님, 저예요, 요한이에요“ 이렇게 기도를 시작하곤 했다. 그랬더니 언젠가 힘들어 터벅터벅 걷던 새벽, 미사길에서 ”요한아, 요한아,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 하고 말을 건네시던 분이 있었다. 지금도 말을 걸어주시면 안될까 생각한다. 

"당신을 다시 느끼고 싶습니다. 글라라, 함께 해줘서 고마워. 우리는 좋은 팀이었어.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하느님, 우리 글라라 잘 보살펴주세요. 고생을 많이 했어요. 너무 일찍 갔어요."

 

그림=조기동
그림=조기동

이따금 주님께서 무엇 때문에 나를 세상에 보내셨을까, 묻곤 한다. 쪼개고 깍고 없애서 당신을 닮은 존재로 만들고 싶으셨을까? 꼭 이런 식이어야 했을까? 조금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그저 건강한 가족, 평범한 가족이길 바랐다. 그분은 그때 어디에 계셨을까?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도대체 계시기나 한 것인가? 너무 하시는 것 아닌가? 나게게 무엇을 바라시는가?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는 바닥을 치는 고통의 신비를 통과해야 하는가? 나는 아직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그는 떠났다 나는 남았다

그는 떠났습니다.
아들 딸에게 한 마디 말도 남기지 않고
그는 떠났습니다.

요즘 선녀는 못돼서
두 팔에 아이들도 안지 않고
혼자서 하늘나라로 가는가 봅니다.

나의 가장 빛나던 시절과
나의 가장 힘들던 시절을 함께한 사람
그는 떠났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
당신이 얼마나 여린 사람인지
아무도 모를 것이라며
미소짓던 사람
나보다 더 나를 사랑했던 사람

나의 역사를 아는 유일한 사람
나의 역사였던 사람은
이제 전설이 되었습니다.

집에서,
회사에서,
성당에서
항상 그과 함께였는데
이젠 언제나 혼자입니다.

혼자서 일어나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회사에 가고
혼자서 또 밥을 먹고
혼자서 일을 하고
혼자서 또 밥을 먹고
혼자서 잠을 청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옛날 우린 천국에 있었습니다.

힘든 저 세상에 내려가 내 나라를 세울 사람은 없는가.
빛나는 분이 물으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손을 들지 못했습니다.
천국이 너무 좋아서
몇몇 사람만이 손을 들었습니다.

저 세상 사람들이 너무 측은해서
저도 손을 들었습니다.
당신도 손을 들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망각의 강물에서 물을 마셨습니다.

천국의 기억은 희미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을 향해 떠났습니다.
혹은 거지로,
혹은 거지를 돕는 이로
분장을 하고

꿈많던 대학 1학년
당신을 만났습니다.
대학 3학년
우리는 결혼했습니다.
잠시 행복했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났습니다.
조아라조선
원더플 코리아
많이 힘들었습니다.

가난

그리고
세상의 물을 너무 많이 마신 나는
내 임무를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천국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임무를 다했습니다.
엄마로,
친구로
천국을 느끼게 해주고
동업자로
봉사자로 임무를 다했습니다.

그리고 잊었던
내 임무를 알려주었습니다.
이제 겨우 살만한데
빛나는 그분께서는
당신을 바라다보시며
딸아, 이제 됐다 하고 당신을 부르셨습니다.

당신은 이제 무대를 떠났습니다.
저는 아직 세상의 무대위에 있습니다.
아직 제 임무,
제 연기는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하느님과 함께 있다가
임무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고
다시 하느님 곁으로 갑니다.

아아 글라라
나의 하나밖에 없는 벗이여
당신은 지금 나를 보고 있는가

어머니
당신은 제 마음을 아십니다.
어머니 당신은
제 마음을 아십니다.
고개저어도 떠나있어도
하늘과 땅을 잇는 하늘의 끈,
당신은 마리아, 제 어머니시요
저는 요한, 당신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어머니
당신은
당신은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떠나보내셨습니다.
저도 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습니다.

주님
당신은 제 마음을 아십니다.
주님 당신은 제 마음을 아십니다.
야속해도 미워도
당신은 제 주님이요
제 안에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캄캄한 밤
외로운 별로 지지만
내일아침
빛나는 태양, 당신으로
일어서게 하소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시여.
19년동안
그를 제게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그 영혼을
받아주소서.

 

조기동 사도요한
대야미성당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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