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세상에 나 홀로 서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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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세상에 나 홀로 서있네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0.09.2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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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오랜만에 종이 주간지를 읽었다. <시사인> 통권 678호(2020.8.18.). 구미가 당기면 단행본이나 모바일 기사를 훑어보는 게 일상인데 어쩌다 활자화된 잡지를 읽게 되었고, 거기서 오래 묵은, 그래서 친구 같은 책을 다시 발견했다. <사랑과 인식의 출발>, 구라다 하쿠조(倉田百三, 1891-1943)가 쓴 책이다. 잡지 북리뷰에서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인 윤성근은 헌책방에서 이 책을 찾는 70대 노인을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1963년에 창원사에서 번역출간한 초판본이다. 당연히 이 책이 책방에 있을 리 없었다. 그분이 연락처를 남겨두고 떠난 뒤 반년쯤 되어 이 책이 새로 입고된 것을 알고, 윤성근은 연락을 취했다.

우편으로 보내드린다고 했지만, 부산에 살던 그 손님은 굳이 열차를 타고 서울까지 와서 그 책을 찾아갔다. 왜 그랬을까? 사연은 이러하다. 젊은 시절 출판사에서 일하던 그가 첫사랑에게 첫 연애편지를 쓰면서 인용했던 글이 <사랑과 인식의 출발>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그분은 늘그막에 첫사랑 생각이 자주 떠오르고, 그 사람을 찾는 대신 연애편지를 쓸 때 도움을 받았던 그 책을 찾기로 한 것이다. 더 비싼 차비를 들여 책방까지 찾아온 이유를 그분은 이렇게 밝혔다. “오랫동안 찾아다닌 짝사랑 같은 책을 찾았는데 어찌 우편으로 받겠소? 내가 직접 모셔가야지.”

최백호는 <낭만에 관하여>라는 노래에서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첫사랑을 떠올린다고 했다. 그리고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하고 잠시 궁금해 한다. 어쩌면 ‘서글픈’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이도 나만큼 변했을 텐데, 옛사랑은 옛기억으로 남아 있을 때 행복하다. 아마 책방의 그 어르신도 첫사랑을 만나기보다 만남보다 더 생생한 젊은 날의 기억을 되찾고 싶었을 것이다.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나는 <사랑과 인식의 출발> 문예출판사, 1975년 번역본을 갖고 있다. 인천에서 부천, 부천에서 서울, 서울에서 예천, 상주, 무주, 경주, 다시 서울, 일산에서 파주로 이사하면서도 나는 이 책을 버리지 않았다. 대학시절에 헌책방에서 구해 읽었던 이 책은 내용은 물론 제목부터 근사하고 가슴을 치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과 인식, 행동과 관상, 삶과 지혜를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구라다는 “사상이란 생명을 성장시키려면 벗어던지고 와야 하는 껍질이다. 그러나 그 껍질을 통과함이 없이 비약하기란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사상을 거쳐, 사상을 넘어 실천으로 나아가는 자비를 요청했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지난 삶을 돌이켜 보며 “영원한 젊음”을 찬미한다.

“나의 청춘은 참으로 진지하고 순결하며, 또한 용감했다. 그리고 고뇌와 시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지난날을 돌아다볼 때, 그와 같은 고뇌와 시련 속에서 올바로 살아갈 길을 개척하여, 인간의 영혼이 참으로 걸어가야 할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 청춘의 그토록 가열(苛烈)했던 동란 속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그림자를 잃어버리지 않고 정도(正道)에서 벗어남이 없이 걸어올 수 있었음을 진심으로 누군가의 은혜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는 터이다.”

내 삶에 자잘한 흠결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큰 걸음에서 그분 뜻에서 아주 비껴나서 걷지 않은 인생이라면, 참 다행이다, 참 복되다, 말할 수 있다. 매순간 선택한 것은 나였지만, 그분이기도 했다. 오히려 그분이 선택하고 내가 복종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직한 답변이겠다. 흠결은 내 몫으로 돌리고, 귀한 뜻은 그분에게 돌리는 게 옳겠다.

구라다는 이 책 본문의 시작을 “철학자는 외로운 투구벌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러면 무엇을 위해 외로운 투쟁을 계속해야 하는가? 사랑이다. 사랑을 얻고 사랑을 하기 위해서다. 구라다는 “사랑은 타인에게서 자기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사랑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질 때, 사랑이 이끄는 투쟁은 정말로 의로운 행위가 된다고 했다.

구라다는 “꿈꾸기를 그만두었을 때, 그 청춘은 끝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도 한창 젊은 시절에 인천시민회관에서 함석헌 선생을 뵌 적이 있다. 엄혹한 군사독재의 시절, 선생은 두 시간 내내 서서 강연을 하셨는데, 지금 기억나는 말은 “나이가 먹더라도 영원한 청년으로 살자.”던 호소뿐이다. 그때 나는 발을 땅에 붙이고 투쟁하는 이상주의자로 살라는 말로 들었다. 예수가 그랬고, 이반 일리치가 그랬고, 도로시 데이와 시몬 베유가 그랬다. 그리고 장일순과 김종철 선생이 그랬다.

자우림의 김윤아 노래 <샤이닝>을 들으면서도 그런 급진주의를 생각했다.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받아줄 그곳이 있을까?
가난한 나의 영혼을 숨기려 하지 않아도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목마른 가슴 위로 태양은 타오르네
내게도 날개가 있어, 날아갈 수 있을까?
별이 내리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바보처럼 나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서 있네
이 가슴속의 폭풍은 언제 멎으려나?
바람 부는 세상에 나 홀로 서있네

풀리지 않는 의문들
정답이 없는 질문들
나를 채워줄 그 무엇이 있을까?
이유도 없는 외로움, 살아있다는 괴로움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최백호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생각한다고 했다. 그게 낭만이라고 여겼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다. 타는 목마름이다. 괴테는 <거룩한 갈망>에서 “더 고귀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 그대를 높이 치닫게 하리니, 이제 그대는 더 이상 암흑의 그늘에 사로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김윤아는 자신의 가난한 영혼을 숨기려 하지 않아도 자신을 안아줄 사람이 있을지 묻고 있지만, 바람 부는 세상에서 별이 내리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바보처럼 그저 눈물을 흘리며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구원받았다는 느낌이 든다.

모든 게 분명하지 않아도 좋다. 아름다움을 보고 눈물 흘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도스토옙스키가 <백치>에서 미쉬킨 공작을 통해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고 거듭 새삼 말하고 있는 것처럼. 당장은 비록 바람 부는 세상에 나 홀로 서있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인생 뭐 다른 게 있겠나 싶다, 배우고 사랑하고 기도할 뿐. 

 

* 이 글은 종이신문 <가톨릭일꾼> 2020년 가을호에 실린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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