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만들어놓은 시간표에 맞춰 살던 17년을 청산하고, 월급노동자의 사슬에서 해방되었다고 선언한 사람이 있습니다. 유행에 민감한 패션잡지 편집자였던 김경이라는 분입니다. 그 분이 “내 취향대로 살며 사랑하고 배우는 법”을 모색하며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김경, 달, 2013)는 책을 썼습니다. 나 역시 내 취향대로 살며 사랑하고 배우다보니 그분을 만났습니다. 우연적 필연처럼 아내의 책꽂이에서 발견한 이 보물을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을 테지만, 이분의 생각이란 문화적 계급적 아나키스트 정도가 되지 않을까 타진해 봅니다.
봉다리 처녀
예술보다 더 예술적인 삶이라고 김경이 지목한 것은 ‘봉다리 처녀’였습니다. 나도 예전에 본 적이 있었던 텔레비전 프로그램 ‘화성인’에 출연했던 분입니다. 김경은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비닐봉투를 무슨 명품백처럼 자랑스럽게 그날 그날의 옷차림에 맞게 멋지게 스타일링해서 들고 다니는 아가씨를 봤다”고 했습니다. 길바닥에 굴러다녀도 아무도 관심 가질 이유가 없어 보이는 매우 평범하게 비루한 비밀봉지를 귀하게 여기는 그녀가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그 봉지들이 정말 예뻐서 자랑하고 싶어서 들고 나왔다는 화법도 마음에 들었고, 남들이 값비싼 명품가방에 집착하듯이 애지중지 유난스레 오직 ‘봉다리’만 편애하는 그녀의 정신세계가 놀라웠던 모양입니다.
김경은 그녀의 정신세계를 가늠해 봅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와 ‘봉다리’를 하나로 엮어냈을까? 돈지랄이 설쳐대는 세상에 대한 저항인가? 아니면 하찮은 일상에 대한 오마주인가? 오마주(homage)란 ‘존경’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인데, 본래 중세 기사의 서임식 과정에서 주군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은 봉신이 두 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는 자세를 가리키는 말이라 합니다. 그것도 아니면 삶의 무거움에 대한 은근한 조롱인가, 스스로 묻습니다. 이유야 알 수 없지만, 비닐봉투를 들고 소개팅에 나갔다가 상대방 남자에게 딱지 맞은 얘기를 들을 때는 괜히 흥분해서 “쳇, 예술이 뭐 별거야? 저런 게 예술이지”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했습니다. 적어도 김경에게는, 사소한 것의 아름다움을 밝히는 일이 예술이었던 것입니다. 돈벌이나 명예랑 상관없이 남루한 삶을 거룩함으로 이끌어 올리는 것이 종교인 것처럼 말입니다.
가톨릭교회는 빵을 떼어 그리스도의 몸이라 합니다. 루카복음에서는 아예 그리스도가 짐승의 먹이로 오셨다고 전합니다. 태어날 때 그분은 구유 위에 놓여 계셨고, 그분이 계시므로 남루한 짐승의 거처는 거룩한 공간이 됩니다. 그분은 명품가방이든 명품교회든 ‘명품’과 상관이 없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불렸으니 평판도 좋지 않았습니다. 봉다리 처녀가 비닐봉투를 애지중지 하듯이, 그분은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늘나라가 들어가리라 약속합니다. 그분의 측근들은 어부들이었으며, 그분의 어머니는 시골처녀요, 아버지는 목수였다지요. 빈센트 반 고흐가 집배원을 성인처럼 그렸듯이, 구원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시작되는 모양입니다.
낭만적=아나키스트
봉다리 처녀를 사랑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낭만적’이라 짐작해도 좋습니다. 김경은 “나는 아나키스트를 낭만주의자라는 말과 거의 동일시한 상당히 어리석은 여자 중 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아는 아나키스트는 사회 전복을 꿈꾸는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다. 그들은 좌익도 아니고 우익도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폭탄을 막 집어던지지도 않는다. 내가 제대로 알고 있다고 믿는 아나키스트는 ‘어떤 주의나 사랑, 종교에도 걸림 없는 진정한 자유인’이다.”
이런 아나키스트 가운데 김경이 흠모하며 손에 꼽은 이가 <동물농장>과 <1984> 같은 소설을 쓴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의외성’ 또는 ‘예기치 못할 회심’에 있다 합니다. 오웰이 처음부터 좌우익 전체주의를 비판하고 인간의 자유를 드러내는 정치소설을 쓴 것은 아닙니다. 나는 아직 읽지 못했지만, 김경에 따르면, 산문집 <코끼리를 쏘다>는 오웰이 작가가 되기 전 미얀마에서 5년 동안 적성에 맞지 않는 식민지 경찰간부로 살아야 했던 시절에 대한 회고록이라 합니다. 그는 이 에세이에서 제국주의에 대한 혐오감과 그 압제자의 한 사람이 된 자신에 대한 수치심을 드러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을 모욕하며 수시로 조롱합니다.
이런 오웰을 구원한 것은 생의 바닥에서 정직하게 써내려간 작가정신입니다.
“작가에게 양심만큼 중요한 건 없다. 하지만 절대로 위선을 떨면 안 된다. 글로 누군가를 동요시키고 싶다면 괴물이 웅크리고 있는 자기 자신의 저 밑바닥까지 내려가 써야만 한다.”(조지 오웰)
식민지 경찰 노릇을 그만 둔 오웰은 런던으로 돌아와 한동안 홈리스나 다름없는 밑바닥 생활을 자청했습니다. 그 동기를 적어놓은 글을 보면 그가 처음부터 아나키스트 취향을 가진 게 분명합니다.
“나는 내 자신이 단순히 제국주의에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인간의 모든 형태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스스로 완전히 밑바닥까지 내려가 억압받는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어졌다. 그들 중 하나가 되어 그들 편에서 압제에 맞서고 싶어졌다.”
오웰은 대공황을 맞은 탄광촌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취재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쓰고, 파시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 부상을 입고 돌아와 <카탈로니아 찬가>를 썼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그의 삶이 묻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웰의 작품은 공허하지 않고 누가 읽어도 어렵지 않습니다. 학자들의 이빨처럼 수수께끼 같은 문장 속에 숨지 않았습니다. 이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오웰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피할 수 없습니다. 삶을 말하자면 정치를 피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정치적’이라는 용어는 이런 거다.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성취하고자 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 보려는 욕망, 다시 말하자면 어떤 책도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적 의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도 정치적 태도이다.”
오웰은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라고 했답니다.
내 영혼의 풍향계
사랑하기 위해 먼저 자유롭게 되라고 합니다. 그 자유가 바닥으로 이끌리는 사람은 복됩니다. 예수가 그랬기 때문이고, 본회퍼의 말마따나 그래야 ‘값비싼 은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닐봉투에서 기막힌 명품을 발견하고, 압제받는 이들의 해방에 동참하면서 의미를 찾고, 상식을 거슬러 사랑을 선택하는 자유가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김경의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를 읽으며 떠오른 사람은 시몬 베유(Simone Adolphine Weil, 1909-1943)였습니다.
<뿌리내림>(시몬 베유, 이제이북스, 2013)을 번역한 이세진은 역자서문에서, “시몬 베유의 사상을 요약하거나 비판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 사람이 정말 그렇게 살았다’는 판단이 우리의 말문을 막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시몬 베유는 애당초 사상 체계를 수립하려고 했던 철학자가 아니었고, 자신의 삶에서 체험한 진리를 사유하고, 자신이 생각한 진리대로 살았을 뿐이라는 거지요. 정작 중요한 것은 교리가 아니고 이념도 아니고 제도와 상식도 아닙니다. 미리 판단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 곳에 고유한 그 사람이 있습니다. 그걸 김경은 ‘취향’이라는 말로 표현했지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는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살면서 뭔가 발음하기 시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겠지요. 그 발음이 철학도 되고 신학도 되고, 시나 소설이 되기도 합니다. 베유는 그걸 ‘영혼의 욕구’라고 했던 거겠죠.
베유는 철학교수 자격시험을 통과한 후에 루아르 강 유역의 르퓌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프랑스 농민사회에서 고갈되어 가는 영성을 발견했습니다. 갓 어린애 티를 벗은 소년 소녀들이 밭으로 공장으로 일하러 갔습니다. 베유는 병약했지만 1936년 공장과 농장에서 임금노동자로 살며 글을 썼습니다. 이세진에 따르면, 이 때문에 앙드레 지드는 그녀를 ‘아웃사이더들의 수호성인’이라 불렀고, 독일 해방신학자인 도로테 죌레는 ‘현대의 성인’이라 불렀습니다. 자유프랑스운동에 참여했던 베유는 <뿌리내림>에서 나치에 정복된 프랑스를 ‘뿌리 뽑힌’ 조국이라 부릅니다.
“그녀가 보기에 뿌리 뽑힘은 군사적 패망 이전에 이미 다각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노동운동이 순수성을 잃으면서 노동자의 뿌리가 뽑혔고, 매사가 도시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노동자보다 소외된 농민의 뿌리가 뽑혔다. 타자를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조국의 영광이라 생각하는 거짓 조국애도 온 세상 곳곳에 뿌리 뽑힘을 낳았다.”
시몬 베유는 조국을 통렬히 비판하면서도 조국에 대한 연민을 가누지 못했고, 노동자들에게서 인간의 존엄성을 발견하고자 했지만 그러한 기대가 무너진 뒤에도 여전히 노동자를 사랑했으며, 한때 평화주의를 지지했지만 독일의 프라하 점령을 보고서 평화주의의 한계를 절감했습니다. 그녀는 엄격한 철학자였지만 열렬한 실천가였고, 열렬한 실천가였지만 결국 죄로 붙잡아 누르는 중력에서 벗어나는 구원은 오직 은총으로만 가능하다고 믿었던 신비가였습니다.
봉다리 처녀와 조지 오웰과 시몬 베유의 처신과 행로는 합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이럴 때 김경은 “내 영혼의 풍향계”인 취향 탓이라고 말합니다. ‘노가다’판에서 일하는 가난한 청년이 어느 날 라디오에서 나오는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에 꽂혀, 그날부터 차비와 점심값을 아껴가며 중고 클래식 LP를 사모을 수 있고, 귀족출신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의외로 미국 노동자계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B급 영화를 좋아했다는 사실도 이런 거라고 했습니다. 김경은 “결국 취향이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기호나 규율이 아무리 방해해도 자기만의 경험을 통해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 재밌는 것,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을 찾아내어 그것들과 함께 삶을 더 잘 즐기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웰과 베유는 남모를 행복 가운데 있었을 거라고 믿습니다.
예전에 만났던, 지금은 어디선가 시인이 된 지인은 한참 오래 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요.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역사적 대의가 맞아떨어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라고요. 그래서 축복합니다. 다른 사람들 생각은 일단 접어 두십시오. 여러분의 몸에 꼭 맞는 배를 타고 원하던 항구에 잘 도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나저나 십자가 위에서 고독했을 그분 역시 바라던 배를 타고 원하던 항구에 잘 도착하셨을 거라 믿습니다.
* 이 글은 <공동선> 2020년 9-10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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