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에 나갔다가 한참을 망설인 끝에 배추를 조금 더 샀다. 김장할 때 가 다 되었는데, 아무래도 우리집에서 키운 배추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였다. 한번 김치를 담그면 내년 4월까지 먹는다. 그러니 반 년 동 안 밥상을 책임져야 할 김장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올해는 김장용으로 배추를 꽤 많이 심었는데, 속이 들어찬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올 농사가 대부분 신통치 않았는데, 아무래도 밑거름도 부족하고 제때에 추비를 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게으름 탓이라는 말인데, 뭐든지 수확할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 게다가 농약상이 권하는 대로 장미배추 씨앗을 샀는데, 장미배추는 자랄 때 장미처럼 오목조목 예쁘게 크지만, 속까지도 파래서 노릇노릇한 배추 속맛을 보기 어렵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배추를 키울 때, 농사를 크게 하는 사람들이야 어쩔 수 없이 농약 치 는 걸 많이 보았지만, 우리처럼 저 먹을 것만 재배하는 경우엔 아침마다 일일이 배추벌레를 잡아 줘야 한다. 배추 잎을 뒤적이다 보면, 부분적으로 잎이 녹아서 구멍이 뚫린 곳이 나타나는데, 그 근방엔 여지없이 배추애벌레가 들어앉아 있다. 핀셋으로 이놈을 들어내서 없애는데, 가끔 핀셋을 찾지 못해 손가락으로 헤집어 배추애벌레를 눌러 죽이곤 하는데, 뒤가 개운치 않다. 농사를 짓는다는 게 그렇게 낭만적 이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순간이다.
처음 산골에 들어와서 밭을 개간할 때였다. 일구던 밭 한가운데 큰 찔레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나는 그걸 두고 보자는 심산이었다. 밭 가운데 나무 한 그루 서 있으면 풍경도 좋고 일하면서 꽃도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때 나보다 먼저 귀농한 뒷집 처자가 그 마음은 가상하지만 정작 농사짓다 보면 걸리적거릴 거라며 뽑아내라고 권하였다. 결국 해를 넘기지 못하고 그 나무를 뽑아냄으로써, 나의 낭만적 입농(入農)은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서 요즘은 우스갯소리 반 진담 반으로, 생태주의를 살려거든 귀농하지 마세요, 하고 말 한다. 산을 개간하는 것 자체가 반생태적이고, 산은 나무와 새들과 짐승들에게 다시 돌려줘야 옳다는 말이겠다. 언젠부턴가 사람이 산에 들어와 화전(火田)을 부쳐 먹고 살다 보니, 이젠 산꼭대기까지 산을 밀어 전답을 만들게 된 것이 아닌가. 목구멍이 포도청이 아니라면 응당 산은 다시 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말이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김해자 시인의 처녀시집에 「배추애벌레처럼」이란 시가 끼어 있다.
"제 벗은 껍질 먹고
힘이 솟는 배추애벌레처럼
푸른 배추 잎사귀 사각사각 갉아먹고 먹은 만큼
풀물 오르는 배추애벌레처럼 내가
먹은 사랑이 내 빛깔이 될 순 없을까
깨뜨린 만큼 품은 만큼 힘이 솟는
배추애벌레일 수는 없을까
그러다 보면 날개가 돋는
배추흰나비는 안 될까"
이 시에선 배추애벌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묻어난다. 물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생애를 통하여 머금었던 빛나는 사랑이 온몸에 녹아나는 어떤 희망사항이 있음을 말하는 것일 텐데, 그 시상(詩想)이 배추애벌레를 통해 형상화되고 있는 걸 보고 내심 찔리는 구석이 많았다. 누구는 배추애벌레를 보고 “먹은 만큼 풀물 오르는 … 사랑”을 노래하는 데, 누구는 아침마다 그 배추애벌레를 잡으려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음이 서글퍼진다. 시와 삶이 다르다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시 같은 삶을 살지 못하는 가엾은 영혼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일까.
만사가 내 한몸의 이해관계와 얽혀 있지 않아야, 우린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동시킬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만사에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야 만사에 이해관계를 짜 넣지 않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산골에 들어와 살면서 ‘자연과 더불어 생기 있게 산다는 것’과 농사짓는 일을 어떻게 화해시킬 수 있는지 고민 중이다. 다만 내 자신 또한 본질적으로 자연의 일부이므로, 내 안에서 해결을 볼 수 있으리란 기대를 조심스럽게 해본다.
서두르지 않고 내 삶이 요구하는 대로, 내 몸이 갈망하는 대로, 내 영혼과 자연이 부르고 응답하는 대로 두고두고 지켜볼 마음이 있다면 좋은 끝이 있지 않겠느냐는 바람이다. 예전에 한창 공부할 때 ‘에포케’라는 말이 정답을 괄호 안에 넣어두는 것, 곧 판단 중지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배웠다. 좀 답답하더라도 괄호 안에 머물면서 답을 찾아가는 수행이 필요한 것 같다. 김해자 시인이 “사랑은 잉태”라고 하였는데, 서두르지 않고 자신 안에서 출산을 기다리는 아기를 기다리는 사랑이 없다면 뭔들 제대로 이뤄지 겠는가.
잉태다
온몸이 자궁인 흙이
어둠 속에서 싹을 키우듯
딸아, 모든 사랑은 잉태다
부디 순산하여라
밖에서 끄집어내는 제왕절개 말고
꽃도 못 피고 사그라질까 미리 얼굴 내미는
여름 코스모스같이 조산하지 말고
어찌할 수 없이 밀려나오는 불가항력으로
은 우물에서 솟아오른다 사랑은
수천의 어머니가 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숨쉬는
우물 밑에 강물이 흐르고 그 아래
천 년 기다려 비상을 꿈꾸는 이무기가 숨쉰단다
사랑은 네 속의 이무기를 날게 하는 것
정녕 솟구치려무나 이무기와 함께─ 「사랑은」, 김해자
항상 문제는 태도다. 아기를 낳는 게 문제가 아니라, 건강한 아기를 적절한 때를 기다려 낳는 게 중요하다. 서두르지 않고 아기에 대한 은근하고 간절한 사랑으로, 천년을 기다려서 이무기를 날아오르게 하려는 끈질김으로 사는 게 필요하다.
어제는 진안에 있는 제재소에서 피죽을 한 차 사 왔다. 3만 원이다. 부리고 나니 상당히 많은 분량인데, 아마 다시 차곡차곡 쌓아두고 땔감으로 쓸라치면 그렇게 생각보다 오래 때지는 못 할 것이다. 일부는 화장실과 창고 고치는 데 비막잇감으로 사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낸 것이다. 그동안 몇 차례 겨울을 지냈는데 항상 땔나무를 해오는 게 만만치 않은 노역(勞役)인 데다, 비록 몇 년 전 수해로 쓰러진 나무라 해도 베어낼 때는 영 마음이 개운치 않았던 탓이다. 그래서 올해는 피죽을 사서 땔감으로 써야지, 하고 몇 번 다짐을 두었지만 자꾸 미루다가 행동에 옮긴 것이다. 겨울을 대비한 ‘나무와의 전쟁’에서 타협책을 찾은 것이다.
시골에 들어와 산다는 것은 ‘소박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기실 그런 측면이 많다. 쓸데없어 용도 폐기되는 물건이 거의 없고, 소박한 밥상이라도 새소리 맑은 공기가 찬(饌)이 되어 주는 환경에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축복에 가까운 것이다. 장작 때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 흙집 구들에 따뜻이 누워 팔베개하고 천장을 바라보는 밤 시간이 그윽하다.
그러나 ‘소박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여기는 탓도 있겠지만, 현실적인 이유가 더 큰 게 사실이다. 산골에서 농사로 수입을 많이 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입이 적으니 당연히 지출을 줄여야 하고, 어차피 원하든 원하지 않든 돈을 아끼고 허술하게 나가는 녀석이 없도록 챙겨야 한다. 그런데 그게 탈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아끼는 것은 좋은데, 거기에 또한 집착하다 보면 사람이 인색해지기 십상이다. 써야 할 곳에 쓰고,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베풀어야 할 때는 베풀어야 한다.
조금은 고립된 산중이다 보니, 가족밖에는 믿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뭐든지 가족들 먼저 챙기고, 주인 없는 것이 지천인데도 구태여 내 것 네 것을 갈라서 생각하는 버릇이 생긴다. 남 이야기가 아니고 내 이야기다. 평소 가족중심주의를 싫어하던 사람인데도, 지금은 자꾸 가족 위주로 생각을 모으게 된다. 여전히 산골 생활이 불안정한 까닭도 있겠다. 내가 먼저 생활에서 안정을 찾아야 남을 돌아볼 여유도 생기겠다 싶은 것이다. 땔감도 눈에 띄는 대로 긁어모아서 제 집 마당에 쌓아두고, 수월하다 싶은 나무가 있으면 돌아보지 않고 베어내게 된다. 사람이 이래 가지고서야 산골에 일부러 들어온 보람이 없어진다. 그래서 좀 깔끔한 맛은 없지만, 우선 자연과 이웃에 대하여 최대한 타협책을 찾고 있는 것이다. 남의 일은 웬만하면 눈감아 주고, 가급적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고, 힘 닿는 대로 마음 닿는 만큼이라도 도움을 주고, 돈을 좀 들여서 난방대책을 세우고, 브루더호프(Bruderhof) 공동체의 철칙처럼 남의 험담을 입에 올리지 말고, 아이들과 잘 놀아 주어야겠다.
물론 마지막 약속은 지키기 제일 어려운 주문이다. 어제도 마을 꼬마 둘이 집에 놀러 왔는데, 나는 내내 내 일만 보았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으니, 아이들이 그러더란다. 아랫집 길수 아저씨는 자치기도 하고 뭣도 하면서 같이 놀아 준다는 거였다. 길수가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사실 아이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어른은 별로 품성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글을 어떤 책에서 읽은 것도 같아 뒷통수가 자꾸 간질거린다. 자꾸 내 발등을 아프게 찍는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시골 살림살이가 영 개운치 않다. 이처럼 삶에 미숙한 사람이 여기 있는 걸 깨닫는다는 것은 참 씁쓸한 일이다. 내 안에도 아름다운 게 많이 있는 것 같은데, 미욱한 삶의 방식 때문에 세상에 자꾸 누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말 한다. 시인의 입을 빌려 나에게 용기를 준다.
“사랑은 네 속의 이무기를 날게 하는 것. 정녕 솟구치려무나, 이무기 와 함께.”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