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가 히폴리투스, 노예출신 교황을 비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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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가 히폴리투스, 노예출신 교황을 비난하다
  • 유대칠
  • 승인 2020.08.1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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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의 뜻으로 읽는 교회사-4

그리스도교 역사 속 정말 비극적인 일은 밖에서 찾아온 것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드러났다. 막상 총칼을 들고 밖에서 죽이겠다고 올 때는 아픔 안에서 하나 되어 서로를 안았다. 그 힘겨움이 ‘남’의 힘겨움이 아니라, ‘우리’의 힘겨움이라며, ‘너’의 힘겨움을 외롭게 두지 않았다. ‘너’의 힘겨움도 ‘우리’ 가운데 ‘나’의 힘겨움이니 말이다. 막상 오랜 박해의 시기, 밖으로 부터 찾아온 그 길고 긴 어려움의 시기 이후, 그리스도교의 아픔은 안으로 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너’의 아픔은 ‘우리’ 가운데 ‘나’의 아픔이 아니었다. ‘나’와 다른 ‘너’는 이제 ‘남’이 되어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안으로부터 무너졌다.

고대 교회는 이론의 중심지가 없었다. 오직 하나 뿐인 중심이 아닌 다수의 중심들이 서로 다투고 화해하며 신학을 일구어가고 있었다. 그 가운데 로마가 수위권의 문제에서 두드러진 곳이었지만, 이론의 면에선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아프리카가 대단했다. 테르툴리아누스와 치프리아누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탁월한 학자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렇다고 북아프리카가 하나 뿐인 유일한 중심은 아니었다. 지금의 터키 지방인 캅파도키아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등의 중심들이 있었다. 그 다수의 중심들에서 저마다 탁월한 신학적 결실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오히려 로마가 제대로 된 이론가 하나 없는 처지였다. 그런 로마에 드디어 탁월한 이론가가 등장한다. 바로 히폴리투스다.

그는 탁월한 이론가였다. 오랜 기다림의 끝에 나온 이론가이었기에 많은 이들은 그에게서 많은 것을 기대했다. 히폴리투스 자신도 많은 것을 기대하였다. 이 정도라면 적어도 어떤 자리로 있어야 한다는 기대 말이다. 많은 이들은 교황의 자리를 기대했다. 어쩌면 그 자신도 교황이야말로 자신에게 마땅한 자리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교회는 그에게 교황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처럼 대단한 이에게 허락되지 않은 교황의 자리는 성 밖 지하 공동묘지를 관리하던 노예 출신의 부제 칼리스투스에게 허락되었다.

 

칼리스투스 카타코바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출처=위키백과)
칼리스투스 카타콤바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출처=위키백과)

히폴리투스 본인도 그의 주변 사람들도 이러한 상황을 인정할 수 없다. 그는 교황 칼리스투스의 사목 정책을 계속 비난하였다. 박해기, 교회를 떠난 이들에 대한 교황 칼리스투스의 관용도 수용할 수 없었다. 제대로 이론을 알지도 못하는 그저 공동묘지나 관리해야할 노예 출신 부제가 교회를 흐트러뜨린다 헐뜯었다. 그는 이론 속에서 숨어서 이론으로 무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관용이란 이름으로 이론을 파괴하는 교황 칼리스투스를 비난하였다.

히폴리투스는 이론의 벽으로 교회를 둘러쌓고자 하였다. 더러운 것을 방 안에 둘 수 없듯이, 더러운 배신자를 교회 안에 둘 수 없다 했다. 교회 안에 배신자의 자리를 없다 했다. 오직 이론상 거룩하고 의로운 이만이 함께 할 수 있다며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이론이 참다운 신앙일까? 이론으로 벽을 만들어 올리는 것이 정말 신의 뜻일까?

마음속에선 수많은 악행들이 쉼 없이 올라온다. 자기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미워한다. 때론 독하게 저주하기도 한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면, 별 죄의식 없이 무시하고 조롱한다. 의도치 않아도 순간순간 학벌로 무시하고, 재산으로 무시한다. 이런 저런 약한 욕구들이 잠시지만 나를 움직이게 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부족한 모습, 이것이 일상 속 우리의 참모습 아닌가? 과연 나는 이론 앞에 당당한 순수하게 거룩한 삶만을 살고 있는가? 정말 그러한가? 정말 오직 그런 이만이 교회에 들어갈 수 있으며 교회란 이름으로 함께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 가운데 누가 그런 교회에 함께 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교회는 ‘거룩하고 의로운 이들만의 자리’라기보다 ‘거룩하고 의로운 이가 되려는 이들의 자리’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 더 적절하게 들리는 것은 죄 많은 나만의 경우인가? 생각해보자. 예수가 부른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순수하게 거룩한 이들만 예수는 부른 것인가? 아니다. 예수가 부른 이들은 힘없고 세상 풍파에 때론 자기 자신의 이기심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불완전한 이들이다. 때론 창녀이고 때론 병자의 모습으로 있는 흔들리고 불완전한 이들 말이다. 그 불완전함에 누구도 쉽게 가까이 하지 않으려는 이들, 누군가는 더럽다 하고 누군가는 역겹다는 이들을, 바로 그런 이들을 예수는 불렀다. 쉼없이 하느님을 배신하지만, 또 쉼 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후회하며 다시 하느님을 향하여 다가오는 이들, 이토록 불완전한 이들, 바로 이런 이들의 자리가 교회가 아닌가 말이다.

이론에 숨은 히폴리투스는 교황 칼리스투스를 비난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의 편과 함께 자신이 진짜 교황이라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교회는 갈라졌다. 밖으로 부터 갈라진 것이 아니라, 안으로 부터 갈라졌다. 노예 출신 교황을 허락할 수 없다는 오만한 이론가 히폴리투스는 진짜 교황을 거짓이라면서 스스로 자신을 진짜 교황이라 소리치며 가짜가 되었다. 한번 갈라진 교회는 쉽게 하나 되지 못했다. 교황 칼리스투스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지만, 화해는 없었다.

히폴리투스

교황 폰티아누스의 시대에서 히폴리투스는 자신이 진짜 교황이라 했다. 그렇게 하나의 로마에 두 명의 교황이 있는 비극의 시대를 만들어갔다. 갈라진 교회가 이어져갔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 밖에서 보는 교회는 어떤 곳이었을까? 한 동안 관용을 취하던 로마제국은 다시 박해를 시작하였다. 황제는 이 두 교황들을 로마에서 사르데냐 섬으로 추방해버렸다. 교황 폰티아누스에게 추방은 곧 죽음이다. 교황의 공석을 피하기 위해 로마를 떠나기 전 그는 교황의 자리에서 자발적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함께 추방당한, 스스로가 진짜 교황이라 소리치고 있던 거짓 교황, 안으로 부터 교회를 갈라지게 만든 이론가 히폴리투스를 찾아가 화해한다.

죽음의 앞에서 드디어 자신이 교황이라며 노예 출신 교황을 인정하지 않던 히폴리투스, 교회는 이론적으로 순수하게 거룩한 이의 자리이어야 한다는 히폴리투스는 교회의 품에 다시 안겼다. 화해하며 말이다. 어쩌면 그가 주장한 오점 있는 이들은 교회가 자리를 내어주어선 안 된다는 주장을 스스로가 부정하며, 교회를 부정하던 대립 교황 바로 자기 자신이 그가 거짓이라던 그 교회에 안겼다.

왜 안으로부터 갈라진 것인가? 노예 출신이 교황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은 갈라질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러운 것일 수는 없었을까? 많은 오점을 가진 이들이 교회에서 거룩함을 향하여 노력하는 것이 이미 온전한 이들만의 교회보다 더 교회스러운 것이라 생각할 순 없었을까? 그것이 더 뜻있는 교회가 아니었을까? 순수함, 어쩌면 그것은 안으로부터 교회를 갈라지게 하는 무서운 폭력이기도 하겠다. 수많은 오점들을 가진 이들이 모여 더불어 조금씩 덜 덜 덜, 그렇게 덜 나쁜 이가 되려 노력하는 곳, 그러면서 더욱 더 거룩함을 향하여 나아가려는 부족한 이의 자리가 교회라고 생각할 순 없었을까? 교회, 아프고 힘들고 부족한 이들의 더불어 있음의 터, 그렇게 홀로 외로운 것이 아니라, 더불어 따스하게 있는 곳, 교회는 정말 그런 곳일 순 없을까? 다시 고민해 본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한다.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고전 세미나와 연구, 번역을 하고 있다
저서에 <대한민국철학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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