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무를 축복하소서
-닐숨 박춘식
1993년, 신나무골로 이사를 마친 그다음 날
성지에서 신나무를 찾으니까 없다고 합니다
애고, 웬 세상에 이런 꼬라지도 있구나, 중얼거리며
문득, 교회와 성당에는 사랑이 안 보이고
절에는 자비가 없다는 말, 그 말들이 생각납니다
십 년 또 십 년 마냥 기다리다 작년 가을에
하늘마마 부르며 신나무를 심었는데
부활 미사도 없는 금년, 컴컴한 이 고을에서는
신나무의 새잎이 부활 촛불로 보입니다
신나무골 순교자들이 어느 달밤
부활 밤 미사를 위해 한티로 올라갑니다
그분들의 묵주신공을 엿들은 신나무 이파리들이
은하수를 신신하게 가득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출처> 닐숨의 미발표 시(2020년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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