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함과 인본주의는 대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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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과 인본주의는 대립하지 않는다
  • 토머스 머튼
  • 승인 2020.03.0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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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머튼의 삶과 거룩함/거룩함과 인본주의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인본주의”의 필요성을 주창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극적이고 자칫 이단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도대체 인본주의는 거룩함과 관련이 있기는 한 것일까?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상충되듯, 이 둘 또한 반대되는 개념은 아닌가? 거룩한 것을 받아들이고 인간적인 것은 배척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인간적인 가치를 옹호하는 것은 하느님을 거부한 사람의 특징이 아닌가? 이제까지 존재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그리스도적 인본주의자들”은 “세상”과의 위험한 대화를 통해 그릇된 낙천주의에 현혹되어 자신의 신앙을 타협한 사람들은 아닌가?

요한 복음에서 거기에 대한 답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셨다.”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의 본성을 택하여 사람이 되셨다면 죄를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사람과 똑같은 그런 사람, 그분의 신비체 안에서 인류와 하느님을 일치시키려 하셨다면 그리스도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비 자체에서 필수적인 진정한 인본주의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인본주의는 격정, 육신, 죄에 떨어지기 쉬운 경향, 왜곡되고 무질서한 자유주의, 불순종을 찬양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렇게 창조한 이상 우리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이 되어 버린 그런 가치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올바른 상태로 보존하고 건지시고 복구하시기를 원하시는 그런 가치들을 우리는 전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자연법, 시민권, 인간 이성(理性)에 대한 권리, 다양한 문명의 문화적인 가치, 과학적인 연구와 기술, 의술, 사회과학과 자연 세계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선한 것을 수호함으로써 교회는 지극히 그리스도교적인 인본주의를 표출하는 것이며, 다른 말로 하면 창조된 존재 그리고 하느님 모상으로서의 총체성과 완전함을 지니고 하늘나라의 절대적 진리와 아름다움에 대한 관조의 운명을 지닌 인간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진출처=patheos.com
사진출처=patheos.com

인간의 구원은 인간적인 모든 것을 벗어버림으로써 얻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이성, 아름다운 것에 대한 사랑, 우정에 대한 갈망, 인간적인 애정에 대한 욕구, 보호받고 싶어하는 욕구, 질서, 사회 정의, 일하고 먹고 자고 싶어하는 본능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런 근본적인 욕구들을 경멸하는 그리스도교 정신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또한 의심할 여지없이 교회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역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좋은 뜻에서의 이 “인본주의”를 보편적이고 공식적인 관심사로 흔쾌히 인정하기는 하지만 자신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로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그리스도교적 인본주의를 교회가 마지못해 몇몇 심미주의자나 사회 개혁가들에게만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필수적인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이 주장이 극단적으로 들린다면, 요한 23세의 말씀을 들어보자. 그는 <어머니와 교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사회 교리가 삶에 대한 그리스도교 개념에 있어 필수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주창한다...”

“사랑하는 자녀인 평신도들은 이 교리를 알고 그들의 행동을 거기에 순응시킴으로써, 다른 이들이 그것을 이해하도록 열성적으로 노력함으로써 이 교리가 퍼지는데 많은 공헌을 할 수 있다 ... 사회적인 교리는 현실에 맞게 바뀌어야 되며 단지 형성되기만 해서는 안된다. 특별히 진리의 인도를 받고 정의를 목표로 하며 사랑을 그 원동력으로 하는 그리스도교의 사회 교리의 경우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리스도적 교육은 모든 종류의 의무를 향해 뻗어 나가야만 하며, 신앙인들에게 그리스도교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경제적 사회적 활동을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심어주고 북돋아 주어야 한다.”

현대 교종들의 가르침은 특별히 기술적인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간적 조건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교종 비오 11세는 (<어머니와 교사>에 인용되어 있는 것을 보면) 산업 사회의 비인간화를 지적했는데 심각한 모순으로 인해 사람들의 선익을 위해 봉사해야 할 노동이 “이상하게 왜곡된 도구”로 변질되었으며, 고철이 공장을 숭고하게 만들고 변화시킨 반면 인간은 그 곳에서 썩고 강등되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인간의 존엄성에 침투하는 세속화된 사회에 대항하여 인간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교회는 돈과 권력을 사람 자체 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의 관점에 대항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그리스도인의 과제는 단순히 사회 정의, 정치적인 질서와 공정한 무역 관행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이 문제는 그것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그것은 사회 구조 자체의 문제이며 인간의 문화적 전통과 관련된 것이다. 현대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과제는 기본적인 인간의 가치를 보호하며 복구하는 것으로, 그런 노력이 없다면 은총과 영성은 인간의 삶에 있어 아무런 실질적인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인간에게 부와 여가 그리고 물론 세속적인 낙원을 약속하는 기술이 얼마나 인간의 가치를 위협하는지를 깨닫는 것은 필수적이다. 굉장한 부(富)를 생산하는 동시에 세계 전체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이 사회의 태생적인 모순을 요한 23세는 <어머니와 교사>에서 간결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는 결론짓기를:

“오늘날 교회는 엄청난 과제를 앞두고 있다: 현대 문명에 인간적이며 그리스도교적인 주해를 다는 것; 그런 주석은 문명의 발전과 그 지속적인 유지를 위해 필요하며 문명 자체가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원문출처] <Life and Holiness>, 토머스 머튼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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