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은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의 줄임말이다. 장시간 노동을 줄이고 일과 개인적 삶의 균형을 맞추는 문화의 필요성이 대두하면서 등장한 신조어인데 1970년대부터 등장한 개념이지만 한국에서는 2018년부터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트렌드 코리아 2018>은 1988년생부터 1994년생을 '워라밸 세대'라고 규정했으며, 이들은 자신을 갈아넣어 일을 하지 않고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실천할 정도의 소득 수준에 만족한다. 워라밸 세대의 핵심 가치는 나 자신(Myself), 여가(Leisure), 성장(Development)이다. 직장 생활을 우선으로 여기는 걸 당연하게 여겼던 과거와 달리 개인 생활을 중시하는 문화가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나는 비영리공익재단 <와글>에서 일하는데, 자율출퇴근제에 탄력근무가 적용되는 곳이다. 1월~2월은 동료들(와글크루)과 함께 조직의 비전/미션을 점검하고 2020년 사업계획과 성과지표를 세우면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와글>의 비전은 “모두를 위한, 시민이 만드는 민주주의”이다. 세 가지 미션은 ① 변화를 만드는 시민의 힘을 키운다(교육 및 네트워킹), ② 차이를 존중하고 합의하는, 성숙한 토론의 툴을 제공한다(플랫폼), ③ 시민이 결정권을 가지는 정치를 설계한다(연구)이다.
생계를 꾸리는 일터인 <와글>의 비전과 세 가지 미션이 나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또한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민주주의에 관심이 높고 변화를 만드는 힘을 키우고 싶으며 차이를 존중하고 합의하는 성숙한 공론장에서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토론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래서 워라밸 세대의 핵심 가치 중에서 성장에 주목하고 싶다. 조직의 성장이 개인의 성장과 무관하지 않으며 특히 협업이 중요한 일터에서는 조직의 비전/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동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건강한 조직은 맹목적인 관계성에 의존하지 않는다. 뭐라도 열심히 하자, 최선을 다 해서 서로 격려하며 상처 받지 않고 안전하게 일을 하자는 막연함은 개인의 성장에도 조직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직의 성장과 함께 개인의 갖는 효능감이 동반 상승할 때 비로소 일터는 비옥해질 것이다. 역량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적합한 업무 배분과 함께 구체적인 성과지표 설정과 달성, 상호피드백을 통해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달성한 지표를 축하하고 다시 성과지표를 설정해가는 과정이 효능감 있는 일터를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
와글크루들의 연령대 분포를 보면 50대 한 명, 40대 두 명, 워라밸 세대인 20대 두 명이다. 다양한 연령과 경험, 다른 성별, 무게가 다른 역할들 사이에서 위계는 존재하고 존중하지만 위계가 폭력이 되지 않고 권위가 권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구성원 모두가 경계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 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두가 동의하는 소통의 방식을 합의하고 구체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제대로 전달되고 피드백이 되는지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온/오프라인 도구들을 활용하고 있다.
평가가 개인과 서로에 대한 비난이 되지 않도록 하지만 서로와 조직의 성장을 위해 성과지표를 기반으로 구체적인 피드백을 전하며 드러난 부족함과 오류들을 채우고 개선할 수 있도록 이후 협업의 내용을 충분히 토론하고 합의하고 결론을 도출한다. 효능감 있는 일터의 핵심가치는 예측가능하기에 느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라는 신뢰일 것이다.
조직에서 정량적으로 과도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닌데도 힘들고 아프고 고충이 쌓인다면 외부의 시선과 지원을 통해 조직을 진단하고 원인을 분석해서 쇄신을 할 수 있는 솔루션을 수행하기를 제안한다. 힘들면 쉬고 아프면 적절한 치료를 받고 고충들은 차근차근 해결할 수 있도록 업무체계를 돌아보는 워크숍을 진행하는 것으로 시작점을 잡았으면 좋겠다.
손지후
비영리공익재단 와글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