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교부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성인 (349년경 – 407년 9월 14일) 선종 1612주년!
초기 그리스도교의 교부이자 제37대 콘스탄티노폴리스 대주교. "황금의 입"(金口, 크리소스토모스 Χρυσόστομος; ‘황금’ 크리소스 Χρυσοs + ‘입’ 스토마 στομa)으로 심금을 울리신 탁월한 설교자!
1600여년전과 다름없이 물신物神(맘몬•돈, 권력) 예찬과 숭배를 부추기는 이 시대에 1600여년 전의 성인의 외침!
"여러분은 언제까지 돈의 종노릇을 할 작정입니까?"(Imo potius quosque servi eritis pecuniarum?)
● 가난의 우월성 선언!
"…가난이 말할 자유를 빼앗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가난하게 파견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들의 사명은 완전한 자유로 말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는 강합니다. 아무도 그에게 손해나 손상을 입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자는 온갖 어려움을 겪습니다. 종들, 황금, 재산, 일, 끝없는 욕심, 사회적 야심, 끝없는 필요 등 모든 것이 그를 억누르고 사로잡습니다” (<히브리서 강해>18, PG 63,137 경향잡지, 2013년 6월호).
● 맘몬(돈) 욕망에 대한 경고!
“… 돈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재물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탓에 가치가 완전히 뒤집어집니다. 누가 행복하다는 말은 그가 돈이 있다는 뜻이요, 누구를 동정하는 것은 그가 가진 게 없다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누가 재물을 모으려고 어떻게 했다거나, 다른 누구는 어찌하다 파산에 이르렀다거나 하는 것들뿐입니다. 누가 군인이 되거나 결혼을 하거나 무슨 직업을 가지려 할 때는, 그것이 빠른 시일 안에 부자로 만들어주는 일인지 분명할 때만 움직입니다. 그렇다면 여기 모인 우리는 이러한 악을 어떻게 쫓아버릴지 고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여러분을 종으로 삼고 있는 맘몬을 언제까지 재갈을 물리지 않은 채 방치할 작정입니까? 여러분은 언제까지 돈의 종노릇을 할 작정입니까? 언제가 되어야 여러분은 욕망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자유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까? 만일 사람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자유를 얻으려고 온갖 수를 다 쓰겠지만, 돈의 감옥에 갇혀있으면서도 여러분은 이 무서운 종노릇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조차 하지를 않습니다. 돈이라는 폭군에 잡힌 삶은 사람의 종노릇보다도 더 무서운 것입니다."(<마태오 복음 강해> PG58, 790 경향잡지 2013년 6월호)
● 기득권층의 사치와 부자들의 탐욕에 대한 가열찬 고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을 공경하고 싶습니까? 그분이 헐벗은 것을 볼 때 못 본체하지 마십시오. 바깥 거리에서 추위와 헐벗음으로 고통당하시는 그분을 돌보지 않는 동안에는 이곳(성당)에서 비단옷으로 그분께 경의를 표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신 분이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분과 같은 분입니다.
제대 위에 계시는 그리스도께서는 「비단으로 된」 제대보가 아닌 깨끗한 마음을 필요로 하시며, 거리에 있는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보살핌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스도의 식탁에 금잔들이 즐비하지만 그분 자신이 굶어 죽으신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먼저 배고픈 이를 먹여 주고 난 다음 그 나머지로 식탁을 장식하십시오. 여러분은 금잔을 만들게 하면서 배고픈 이에게 물 한 잔을 주지 않습니다. 이로써 얻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제대를 금으로 된 제대보로 꾸미면서 헐벗은 이에게 필요한 옷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나그네로서 하루 밤을 묶을 곳을 찾으면서 헤매는 사람을 보면 그리스도를 생각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은 나그네인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성당의 바닥과 벽과 온 기둥을 장식합니다. 등경에다 은으로 된 사슬을 매달면서 감옥에서 사슬에 매여 있는 그분을 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성당을 이런 물건들로 장식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예물과 함께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도록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만 여러분이 예물을 바치기 전에 가난한 이들을 먼저 도와주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성당을 장식하는 데 협조하지 않았다고 해서 고소당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지옥의 꺼지지 않는 불 속에 떨어지게 되고 악마들과 함께 고초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당을 장식할 때 고통 받는 형제를 못 본체하지 마십시오. 그는 돌로 된 다른 성당보다 훨씬 가치 있는 성전입니다.(<마태오 복음 강해> 50, 3~4 '교부들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 (10)' 가톨릭신문2005년6월5일)
● 정치권력에 대한 경고!
“지금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모든 통치자들이 하느님께서 뽑아 세운 자들입니까? 그렇다면 저들이 제정한 모든 법률과 규정이 선한 것이요 따라서 이의 없이 복종해야 할 텐데, 과연 그렇습니까? 대답은 ‘아니’올시다. 많은 통치자들이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여 거대한 재산을 모으느라 백성을 착취하고, 저들의 악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부당하게 처벌하며, 이웃나라와 불의한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게 현실이지요. 저들의 법이 그릇되었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것에 불복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는 최고의 권위는 땅의 법이 아니라 하느님의 법입니다. 만일 이 두 법이 서로 충돌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하느님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 주교직을 박탈당한 참 주교의 마지막 강론!
“머잖아,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형제들과 누이들을 떠나야 할 것 같군요. 하느님이 주신 일터에서 나쁜 사람들이 나를 데려갈 겁니다. 나는 지금 슬픕니다. 비통합니다. 화가 납니다. 하지만 절망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희망을 느낍니다. 이 희망의 원천은, 비록 내가 육신으로 형제와 누이들과 이별하지만 영으로는 결코 헤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를 입증하십니다.
... 그분이 돌아가신 뒤에 비로소 사도들은 깊은 가슴으로 그분을 알게 되었지요. 마찬가지로 내 육신이 형제와 누이들을 떠날 때 나는 지금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깊게 그들을 알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느끼는 이 슬픔은 녹아내리고, 비통한 감정은 달콤하게 바뀌고, 분노에 찬 이 가슴 또한 어루만져지겠지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린 사랑을 깨뜨려 부술 수 없습니다.”
● 성찬의 식탁과 가난한 사람들!
"물론, 성인께서는 성체 신비에 대한 관상에서 도덕적 결론도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분은 청중에게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맺은 친교는 가난하고 굶주린 이웃에게 물질적 도움을 베풀 의무를 지운다는 것을 일깨워 주셨습니다.주님의 식탁은 믿는 이들이 예전에는 무시했을지도 모르는 가난하고 궁핍한 이들을 알아보고 환대하는 자리입니다.
그분은 모든 시대의 신자들에게 성찬의 희생제가 봉헌되는 제대 너머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권고하시며, 가난한 이들을 도울 때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희생 제물을 그리스도의 제대 위에 바칠 수 있음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교종 베네딕토 16세<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 서거 1600주년 기념 서한> 2007년 8월 10일.천주교주교협의회)
● 성인의 마지막 말씀!
“얼마나 오래 현실에 못 박혀있으렵니까? 얼마나 더 오래 있어야 깨달을 수 있습니까? 얼마나 더 우리의 구원에 소홀하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마땅하다고 여기신 것을 기억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온유하신 사랑으로 미래 재화를 얻을 수 있도록 우리의 신앙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으로 그분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시다.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성부와 성령께서는 영원히 영광 받으소서. 아멘."(앞의 글)
● 유배의 길목, 이순(耳順)을 앞둔 성인의 선종구(善終偈)!
“모든 것을 통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δόξα τῷ Θεῷ πάντων ἕνεκεν /doxa tō Theō pantōn heneken / Glory to God for all things.)
요한 금구 성인님 !
저희가 노예적 욕망의 자본주의 시대에 가난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여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를 통하여 돈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방진선 토마스 모어
남양주 수동성당 노(老)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