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르나움 어촌마을의 밀집가옥 안에 거점을 둔 예수는 제자들과 그 마을의 회당에 들어갔다. 다음은 예수의 첫 번째 공식적 활동을 보여주는 카파르나눔 회당 사건에 대한 〈마르코복음〉의 묘사다.
그들은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마르 1,21~28
이 텍스트는 예수의 첫 번째 회당 활동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기보다는 대중이 기억하고 있는 예수활동의 전형적 양식을 집약하고 있다. 그것을 분석적으로 살펴보면, 두 가지 양상을 띤다. 하나는 그의 선포가 범상치 않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축귀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그이에 관한 소문이 온 갈릴래아로 일파만파로 퍼져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이는 추종자들과 함께 다른 마을, 특히 ‘촌락회당’을 두루 다니면서 이와 같이 가르침과 기적행위를 펼쳤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마르 1,38-39)
물론 예수의 마을 안에서의 대중활동이 반드시 회당인 것은 아니다. 〈마르코복음〉 2,1~12는 중풍병자를 고쳐주는 얘기인데, 그 장소는 ‘카파르나움의 집’이다. 그이가 묶고 있던 베드로의 집일 수도 있지만 이야기의 정황상 집의 크기가 어느 정도는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촌장인 제베대오의 집일 수도 있고, 혹은 다른 유력자의 집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 마을이 아닌 다른 마을의 집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곳은 회당이 아니라 마을사람 아무개의 집이다.
하지만 마을 안에서 활동할 때 가장 전형적인 장소는 회당이다. 그곳에서 그는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마을의 지도자들과 갈등이 벌어졌다. 그리고 뒤에서 이야기 하겠지만, 이 갈등으로 그이는 그 이후 더 이상 회당 안에서 활동할 수 없게 되었다.
회당에서 갈등이 발생하다
갈등의 첫 번째 조짐은 나병환자를 치유한 사건이다.(〈마르코복음〉 1,40~45) 나병환자(λεπρος)는 마을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레위기〉 13~14장에는 ‘피부에 생긴 악성 질병’에 대해 길게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을 헬라어로 번역한 성서인 ‘셉투아긴타’(일명 ‘칠십인역성서’)는 이를 ‘레프로스’(λεπρος)로 번역했다. 〈레위기〉는 이런 질환에 걸린 이를 마을에서 격리하라고 명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매우 오랫동안 잘 지켜진 계율에 속한다. 그렇다면 그이를 치유한 장소는 회당 안은 물론 아니고 마을 안도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데 중요한 것은 예수가 그를 치유한 뒤 율법에 따라 사제에게 보여 깨끗해졌음을 입증하라고 했다. 한데 그 결과는 그 일로 “예수께서는 드러나게 동네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 곳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1,45)
그것은 이 치유행위가 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할까. 이후의 예수의 활동이 갈등에 관한 것이니 필시 갈릴래아의 많은 마을회당에서 이 행위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데 왜 문제가 되었을까. 예수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율법대로 한 것인데 왜 문제란 말인가.
두 번째 갈등의 조짐은 〈마르코복음〉 2,13~17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엿보인다. 여기에는 세관원 레위를 제자로 부르는 사건이 다루어져 있다. 여기서 세관원은 호숫가에 있는 세관(τελωνιον)에서 일하는 자이니 통행세나 관세의 징수업무를 수행하는 자다. 이런 세관원에게 징세를 당하는 이는 상인이나 순례자다. 반면 농민들과는 업무상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한데 이스라엘 사회의 지배담론 속에서 세관원은 민족의 배신자로 취급되었다. 그것은 상인이나 순례자가 지배담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것은 이들이 일상에서 대중의 생각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반면 중앙의 권력자는 세관원에게 과잉징세로 뜯길 일이 없으니 그들을 증오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세관원에 대한 증오담론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은 중앙의 권력이 일상에 거의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아무튼 세관원은 촌락사회에서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들 역시 회당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자다. 그렇지만 예수가 그런 자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더욱이 세관원들(τελωναι)과 죄인들(ἁμαρτωλοι), 그런 ‘천한 자들’과 더불어 식사를 했다. 그들이 회당 안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은 그런 자들과는 상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바로 ‘바리사이들의 율법학자들’(οἱ γραμματεις των Φαρισαιων)이 예수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저 사람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려서 음식을 먹습니까?”(2,16)
‘바리사이들의 율법학자들’이 누구를 뜻하는지 확실하지 않다. 〈마르코복음〉 3,22에는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οἱ γραμματεις ἀπὸ Ἱεροσολυμων καταβαντες)라는 표현이 나온다. 즉 율법학자를 묘사할 때 ‘예루살렘에서 내려온’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들과 ‘바리사이들의’가 붙은 이들이 나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리사이들의 율법학자들’은 촌락사회를 주도하는 바리사이들의 엘리트, 곧 지방의 엘리트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를 공공연히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예수는 이와 같이 반론을 편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2,17) 예수의 관심은 ‘보다 아래’를 향하고 있는데, 중앙의 권력은 말할 것도 없고 촌락사회 안에서도 그들은 배제의 대상이었다. 예수는 스승이었던 요한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미시권력, 즉 일상권력의 문제에 다가가고 있었다.
아무튼 지방의 율법학자이 촌락의 바리사이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예수는 촌락사회에서 갈등의 핵이 되었다.
갈등이 폭발하다
예수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마르 3.1-6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안식일에 촌락회당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사람들은 예수를 주시했다. 그들 중 일부는 율법에 어긋난 행태를 찾고자 했다. 한데 예수는 그런 그들에게 대놓고 문제 행동을 한다. ‘손이 오그라든’ 이를 앞으로 나오라고 하고는 안식일에 이 사람을 치유하는 것이 옳은지 묻는다. 물론 문제의 장애인은 응급환자가 아니다. 안식일에 꼭 고쳐야만 하는 이는 아니다.
한데 예수는 자신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려는 이들을 향해 ‘왜 안식일은 안 되는가?’라고 묻는다. 손이 오그라든 이는 응급환자는 아니지만 그 질환으로 평생 고통 속에 살아왔다. 그는 어느 날이든 치유될 수 있으면 치유되어야 한다. 그것이 그에게 구원이다. 한데 구원을 위한다는 율법은 안식일에는 그가 구원받아서는 안 된다고 한다. 결국 예수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이 텍스트 앞의 텍스트에서 말했던 것처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여 예수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안식일이 성찰하라’는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바리사이는 ‘헤롯의 지방관리들과’(μετα των Ἡρωδιανων συμβουλιον) 공모하여 예수를 적대하는 활동에 나서기로 했다. ‘헤롯의 숨불리온’(των Ἡρωδιανων συμβουλιον)을 한글번역본들은 이구동성으로 ‘헤롯당’이라고 옮겼고 영어성서들 다수도 ‘the Herodians’이라고 썼는데, 나는 이 표현이 마치 이스라엘 대중 가운데 헤롯을 지지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것처럼 오독될 것이 우려되어 다른 번역을 시도했다.
이때 ‘헤롯’은 헤롯 대왕이 아니라 그의 아들이자 갈릴래아의 통치자였던 안티파스다. 그리고 안티파스는, 그의 부친이 그랬듯이, 그의 영토 내의 요소요소마다 요새를 건설하여 자신의 용병을 주둔시켰다. 그들의 주된 역할은 지방에서 일어날지도 모를 반란을 억제하는 것 외에 촌락들이 왕에게 바칠 공물을 징수하는 것이다.
중앙의 권력이 지방을 통제하는 최선의 방법은 직접통치다. 즉 마을마다 왕의 관리를 파견하여 통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법체계가 지방까지 잘 작동해야 하고 중앙 권력을 정당화하는 지배이데올로기도 마을 곳곳까지 스며 있어야 한다. 이런 행정력뿐 아니라, 지방 곳곳까지 충분히 통제할 만한 군사력의 보유는 기본이다. 그것은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한다. 한데 예수 당대는 그런 정도의 발달된 국가가 존재하지 못했다. 하여 그 대안으로 촘촘하게 지방을 통제하지는 못하지만 최소한의 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방식이 활용되었다. 바로 왕의 요새에 자신의 용병을 주둔시키는 것이다. 이들은 주군인 안티파스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하는 자들로, 마을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하고 또 마을이 모운 공납물을 수거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일종의 낮은 수준의 ‘왕의 지방관리’였다.
그런데 이런 제한적 통치는 왕의 지방관리들이 마을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일일이 간섭하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실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대부분 알지도 못했다. 그래서 안티파스의 공권력의 추적을 당하는 요한의 잔당인 예수 일행이 마을 안에서 은거하면서 활동하는 것이 가능했다.
한데 예수는 마을의 회당에서 활동하면서 일상 속에 작동하는 회당체제적인 미시권력이 중앙성전의 거시권력 못지 않게 민중을 배제하고 억압하는 장치였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성전의 제사가 민중에게 구원의 통로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회당도 민중에게 구원을 베풀지 않았다. 아니 그들은 회당을 통해 일상에서도 배제를 체험해야 했다. 하여 예수는 그런 일상의 권력에 맞서야 했다.
갈등은 폭발했다. 바리사이는 예수는 좌시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모든 바리사이가 일사분란하게 적대행위를 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대중은 모든 바리사이가 그랬다고 믿었다. 아무튼 촌락사회의 많은 바리사이는 안티파스의 당국에게 예수의 마을에서의 활동을 제보하였다. 이것은 예수일행이 더 이상 마을 안에서 활동할 수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에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호숫가로 ‘물러갔다’(αναχωρεω, withdraw).”
김진호
현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
전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소 연구실장, 한백교회 담임목사, 계간 《당대비평》 주간.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서울신문》 《주간경향》 《한겨레21》 등의 객원컬럼리스트. 《예수역사학》 《예수의 독설》 《리부팅 바울―권리 없는 자들의 신학을 위하여》 《급진적 자유주의자들. 요한복음》 《권력과 교회》 《시민K, 교회를 나가다》 《반신학의 미소》 등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