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봉 칼럼]
빈센트 반 고흐,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가슴이 설렌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라파엘로는 귀부인들의 초상을 그리고, 성화 속 인물조차 그가 만난 귀부인의 얼굴을 닮았기 때문에 돈방석에 앉았다. 평생 자신의 재능을 탕진하다가 매독으로 요절한 이 사람과 빈센트 반 고흐는 차원이 다르다. 궁궐같은 저택에서 노니는 성모와 아기 예수가 등장하는 라파엘로의 그림은 우아하지만, 삶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고뇌와 슬픔과 아픔이 없다. 교황에게 이쁨 받고, 사교계의 환대와 돈벌이에 집착한 사나이다.
빈센트는 그 흔한 상인들과 귀부인, 성직자의 얼굴을 한 번도 그린 적이 없다. 그는 성화도 그리지 않았다. 생 레미 정신요양원에 머물 때, 아픈 영혼을 다스리기 위해 렘브란트의 그림을 제 방식으로 베껴놓은 ‘착한 사마리아인’ 정도가 전부다. 빈센트에게 거룩한 풍경은 성경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는다. 보리나주의 광산촌에서 바라본 광부들과 그들의 불쌍한 가족들, 하루 일을 마치고 어둠 속에 둘러앉아 감자를 먹는 사람들 속에서 ‘거룩한 등불’이 우리 영혼을 비춘다고 믿었다. 그에게 성인이란 우편배달부와 같다. 요람을 흔드는 여인과 슬픔에 젖은 매춘부였다. 그러니, 그의 그림은 돈이 될 수 없었고, 살아생전에 제대로 팔린 그림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늘 가난했고, 캔버스와 물감을 살 돈이 언제나 부족했다.
빈센트 반 고흐는 평생 동지이며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인물화를 그릴 때면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구성을 염두에 둔다. 가령 3등 대합실이나 전당포, 집 안 같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구성을 상상하지.”라고 말한다. 나중엔 아예 화상(畵商)에게 그림을 팔 생각조차 접는다. 팔리지 않을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그 사람의 친구가 누구인지 둘러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 교구 주교님의 친구가 누구인지, 우리 본당 신부님이 어떤 사람들과 주로 술을 먹는지, 내가 만난 그 사람이 주로 어떤 부류의 인간들과 어울리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그렇다고 애써 탐색할 일은 아니겠지만, 친구란 그런 것이다. 유유상종(類類相從),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린다. 빈센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하나만 읽어보자.
“테오야, 터널이 끝나는 곳에 희미한 빛이 보인다면 얼마나 기쁘겠니. 요즘은 그 빛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인간을, 살아있는 존재를 그린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물론 그 일이 힘들긴 하지만, 아주 대단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내가 예의범절을 까다롭게 따지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요령이 없다는 건 솔직히 인정한다. 하지만 그 대신 가난하거나 평범한 사람들과는 더 잘 지낸다. 앞 사람들에게서 잃은 것을 뒷사람들에게서 얻는다. 결국은 나 자신이 관심을 갖는 환경, 표현하고 싶은 환경 속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이 올바르다고 할 수 있지 않겠니. 그걸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문제인 것이지.”(1882년 3월 3일.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예담, 1999)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할 수는 없다. 사람이란 제 마음이 열리는 방향에 서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기 마련이다. 이걸 편벽된 사랑이고, 편파적인 사랑이라고 나무랄 수 없다. 빈센트는 세상사에서 뒤처진 사람들을 먼저 사랑했다. 한 번도 상류층을 선망한 적이 없는 빈센트에게는, 어쩌면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데 굳이 큰 결단이 필요하지 않았다.
복음서의 명령이 아니더라도 빈센트는 그들에게 마음이 열렸고, 그들에게 갔고, 한 번도 그들에게서 마음을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사실 그 사람들처럼 ‘가난한’ 화가였다. 그가 유일하게 애정을 나누었던 대상도 매춘부 시엔이었다. 다시 또 여기서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마태 21,31)던 예수님 말씀이 뒤따라온다.
빈센트 반 고흐의 이런 이야기는 품격 있는 신앙을 요구하는 점잖은 노신사들에게 불편하다. 이럴 때 가톨릭교회는 중남미 주교회의의 <푸에블라 문헌>과 교황청에서 펴낸 <간추린 사회교리>(정의평화평의회)에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말로 응답한다. 요한 바오로 1세 교종은 1978년에 즉위하면서 “가난한 이들은 교회의 보물”이라고 말했다.
가난한 이들이 그렇게 소중하다면,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만사를 젖혀놓고 그들을 먼저 만나러 가야 하지 않을까? 복음서에서도 남의 밭을 부치다가 보물을 발견하고는, 가진 재산을 다 팔아 그 밭을 샀다는 어느 소작인 이야기를 전한다.(마태 13,44 참조) 문제는 이걸 그저 “복음서의 비유는 그저 이야기일 뿐”으로 치부하고 생각 없이 넘겨버리는 ‘미적지근한’ 신앙에 있다. 이런 믿음은 저렴하고 보잘것없는 믿음이다.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 하고 네가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묵시 3,16-17)
복음서와 교회 가르침이 전하는 ‘편파적인 사랑’은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나는 좋은 물에서 놀고 싶고, 풍요로운 일상을 포기할 뜻이 없기 때문이다. 신사숙녀들과 어울리고 다복한 이들과 더불어 부자로 오래 살고 싶기 때문이다. 땅을 파는 농부와 뜨거운 아스팔트의 더운 열기를 감당하는 잡역부들이 흘리는 땀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헬스클럽에서 런닝머신을 타며 땀 흘리고 싶은 것이다. 나는 강한 자들과 한 편을 먹고, 가난한 이들과는 인연을 맺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도로시 데이는 평생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살며 그리스도인들에게 ‘환대의 의무’를 다시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에, 노트르담 대학은 “그녀는 일생 동안 괴로운 사람은 편안하게 해주고 편안한 사람은 괴롭게 했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레테르 훈장을 주었다. 이런 이유로 나도 빈센트 반 고흐처럼, 도로시 데이처럼, 예수님처럼 편파적인 사랑을 하고 싶다. 하느님조차 노예들을 편드시는 편파적인 하느님이었기 때문이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