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와 사제, 수도자들에게도 ‘신앙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영적 세속화 시대, 성직자 권위주의에 대한 유감-7
프란치스코 교종은 사도적 권고인 <복음의 기쁨>을 통해 세상을 향해 출발하고, 뛰어들고, 함께 가며, 열매 맺고, 기뻐하는 교회를 요청했다. 교종은 “문 밖에서 백성들이 굶주릴 때, 예수께선 끊임없이 ‘어서 저들에게 먹을 것을 내어주라’고 가르치셨다.”면서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 받고 더럽혀진 교회를 나는 더 좋아한다.”(<복음의 기쁨>, 49항)고 말했다.
교종이 믿는 교회는 “통행료를 받는 곳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집”이기에 모든 사람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성체도 “완전한 자들을 위해 내리시는 상이 아니라, 약한 자들을 위해 주시는 강력한 치료제요 영양제”라면서 “성사를 향해 나아가는 문은 어떤 경우에도 닫혀서는 안 된다.”고 권고했다. 교종은 이 시대의 요구를 무시한 채 전례와 교리에만 “과시적으로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교회를 “바깥을 향한 존재”로 규정한다.
참된 신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역대 교황들은 바티칸에 머물며 황제다운 위용을 과시해 왔다.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1세, 프란치스코 교종은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 세상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봉사직’으로서 자신의 소임을 성찰했다. 교회가 아직도 봉건제적 유습을 버리지 못했어도 자각한 사람들이 먼저 프란치스코처럼 옷을 벗고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 주위의 시선을 잠시 접어두고 복음적 확신 안에서 거닐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다.
복음은 현실 앞에서 ‘중립’적이지 않다. 중요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일부 주교들은 “신자들이 모두 다 같은 생각이 아니라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할 수 없다고 변명해 왔다. 물론 교구 신자들 가운데 정치적 견해와 사안에 대한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처럼 과격한 발언으로 사제들의 사회참여적 행동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고, 침묵하고 있지만 마음으로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사제란 ‘복음적 진정성’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하며, 신자들의 동의를 반드시 구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신자들의 생각이 아니라, 복음적 명령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섬겨야 할 분은 하느님이지, 신자가 아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의지에 ‘복종’하기로 작심한 ‘하느님 백성’이다. 때로 설득의 대상이기도 한 다른 주교와 사제, 평신도에게 알아서 미리 ‘투항’하는 일부 사제와 주교들을 보면, 복음에 대한 충실성을 의심하게 한다. 교도권이란 신자들의 의견이 갈릴 때일수록 효력과 효용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천주교 제주교구장이었던 강우일 주교는 그동안 여러 기회를 통해 ‘신앙의 재구성’을 요구해 왔다. 이 요구는 단지 신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주교와 사제, 수도자들에게도 ‘신앙의 재구성’이 요청된다. 절박한 시대의 요구 앞에서 우리가 예수의 제자라면 응당 스승 예수와 운명을 나누어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영광뿐 아니라 십자가도 나눠 가져야 한다. 주교와 사제들이 “만일 예수가 나였다면...” 하고 묻지 않는 것은 절실한 기도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