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증후군, 사랑할 줄 모르는
최태선 칼럼
언뜻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잠깐 보았다. 이젠 사전에 질문내용을 정하지 않고도 기자회견을 열만큼 대통령 직에 익숙해졌나보다. 그는 국민들이 이미 실감하고 있고, 두려워하고 있는 의료대난에 대해 별 걱정을 하지 않는다. 응급의료체계가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도무지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래도록 권력에 노출된 사람은 “오만증후군”에 감염된다.
버클리대 심리학과 교수 켈트너 교수는 20년 간 연구를 통해 연구대상에게 권력을 줄 경우 그들이 마치 정신적 외상을 유발하는 뇌 부상을 당한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연구대상들은 더 충동적이 됐고, 위험에 대한 인지도가 떨어졌으며, 가장 중요하게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할 능력이 하락했다.
영국의 외무부 장관이었던 신경학자 오웬과 그의 공동저자 조나단 데이비슨은 2009년 브레인 학술지에 실린 논문에서 이 장애를 ‘오만 증후군’(Hubris syndrome)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증후군을 “권력자, 특히 굉장히 성공적으로 특정 기간 동안 큰 견제 없이 권력을 누린 지도자에게 생길 수 있는 장애”라 정의했다.
권력은 환자의 공감능력을 모두 죽이는 종양과 같으며 오만 증후군의 14가지 의학적 증상에는 남에 대한 노골적인 경멸, 매우 떨어지는 현실성, 침착하지 않거나 무모한 행동, 무능함의 표출 등이 있다고 한다.
오만증후군의 가장 치명적인 결과는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통해서 그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가 정말 국민을 사랑하고 걱정한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그러나 그에게 중요한 것은 “관철”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에 절대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관철하는 것이 대통령의 직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를 그런 사람들이 주도하고 있다. 뉴 라이트 세력의 전진 역시 이와 맥을 같이 한다. 뉴 라이트들은 대부분 지식인들이고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사고가 국민들의 사고와 불일치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사고에 절대성을 부여하고, “관철”을 자신의 모토로 삼는다.
누구의 이름을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이 정부 들어 대통령이 임명하는 이들은 한결같다. 새삼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그런 사람들이기에 이들은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었고, 이들은 그것이 모두 제 실력으로 거둔 결과로 생각한다. 이기적이면 이기적일수록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우리 시대 문화의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알아야 할 것은 결국 이들도 죽는 순간 자신이 사랑하지 못했음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글쎄 모르겠다. 이들이 완전히 만족하며 죽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죽음이란 모든 실체를 드러나게 하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 그들도 결국 사랑하지 못한 자신의 한계를 깨닫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짐작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세상에서 이상한 일이 아니다. 네로는 시를 짓기 위해 로마에 불을 질렀다. 오래 전 이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은 네로가 정신이상자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불을 지른 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시로 로마 시민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대통령을 비롯하여 식민지 시절 우리 국민의 국적이 일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한 마디로 레 미제라블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보며 결국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과 다르다. 예수님의 사랑은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사랑이다.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너희가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자매들에게만 인사를 하면서 지내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 사람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나는 늘 예수님의 이 말씀 앞에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식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마다 나는 이 말씀이 생각난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지금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좋은 것인가를 묻는다. 원수는커녕 내게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미워할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저녁을 먹을 때에, 악마가 이미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를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실제로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셨다. 그것도 끝까지 사랑하셨다. 그분은 가룟이 당신을 팔아넘길 것을 아셨다. 그러나 그것을 아신 후에 당신을 저주하며 부인할 베드로를 비롯하여 당신을 팔아넘길 가룟의 발까지 씻어주셨다. 물론 그것은 이벤트였을 수 있지만 그분은 그렇게 당신의 사랑을 완성하셨다. 그분은 자기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나는 늘 이 “끝까지”라는 단어를 마음에 새긴다. 비록 나를 버리고 간 사람들도 나는 기억하고 기다리고 있다.
오래 전 들었던 이야기다.
금쪽같던 외아들이 과로로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며느리와 어린 두 손자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기가 차지도 않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린 듯 했습니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난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다독였습니다. "얘야, 이제 그만 울어라. 어린것들 봐서라도 기운을 차려야 하지 않겠니?"
그리고 두 사람은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더욱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만 갔습니다.
가게를 운영하랴 가정을 꾸려가랴 과로를 거듭하던 며느리가 교통사고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이미 여러 신경 세포가 죽어 여러 곳이 마비되었습니다. 하루 온종일 꼼짝 없이 누워 지내야만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빨리 친정으로 보내라!" 난리들이었습니다.
"며느리도내 자식인데 내가 거둬야지. 이 불쌍한 것 나 아니면 누가 거두겠냐?"
그렇게 결심한 지 벌써 7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시어머니는 지금까지 묵묵히 며느리 병수발을 혼자서 도맡아 해 왔습니다. 물론 병이 길어지다 보니 가끔씩 짜증도 나고 이제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한 번 시작한 일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끝까지 해보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시어머니의 오직 한 가지 걱정은 당신이 며느리보다 먼저 떠나면 "저 불쌍한 것 누가 돌보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며느리 먼저 데려가시고 나서 자기를 데려가 달라.'라는 기도를 간절히 드리고 있습니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인생의 과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사랑을 완수해야 한다. 사랑은 인생의 오직 유일한 시금석이다. 그래서 나는 대통령이나 최근 권력의 선봉에 나서는 뉴 라이트 식자층이 불쌍하다. 생각해보니 그들이야말로 사랑해야 할 원수들이다. 사랑은 멀리 있지 않다. 나도 이 이야기의 시어머니처럼 내게 주어진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해야겠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