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염치없는 친일관료들, "내어 놓아라, 우리가 강간하리라"
김선주 칼럼
떼거지로 몰려왔습니다, 마을 남자들이, 롯의 집으로. 롯의 집에 두 명의 남자 손님이 들어간 것을 보았습니다, 마을 남자들은. 롯은 자기 딸들을 내놓으며 “아직 숫처녀인 내 두 딸을 대신 강간하시오”라고 애원합니다. 하지만 마을 남자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여자보다 남자를 더 좋아하는 동성애자들이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강간이 목적이 아니라 강간이라는 성적 폭력을 통해 상대에게 모욕과 수치심을 주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사람이나 집단이 있다면 그건 권력입니다. 수치심은 나보다 강하고 거대한 힘이나 집단에 의해 파생되는 감정입니다. 수치심을 소리라고 가정한다면, 수치심이란 힘과 권력이 자기를 과시할 때 타자의 인격이 찢기고 파열되는 소리입니다.
소돔 사람들은 샘물이 솟는 오아시스에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유목민들이 떠돌며 사는 사막 기후에서 물이 있는 곳을 선점하고 그곳에 정주(定住)하는 것은 특권이었습니다. 소돔 사람들은 정착하여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거주지 없이 떠도는 유목민들이나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텃새를 부릴 수 있었습니다. 텃새라는 말을 고상한 학술적 용어로 말하면 정주권입니다.
소돔 사람들이 롯의 집에 몰려와 손님을 강간하겠다고 을러멘 것은 정주권자의 권력의지였습니다. 롯 역시 떠돌이 유목민으로 소돔에 들어와 사는 비정주민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자신들의 권력의지를 드러냈던 겁니다. 자기 땅에서는 당연히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의식, 타자(이방인)에 대해서는 윤리와 도덕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의지였습니다. 이 주류 의식은 힘없는 누군가를 가해(加害)하더라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가해자의 우월의식’입니다.
주류 의식을 갖게 되면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집단적 가해세력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개인이 원치 않아도 가해자의 세력에 가담함으로써 가해자가 될 수 있고 그것을 범죄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류 의식에는 가해자의 우월 의식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류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 서울대학에 들어가기를 힘쓰고, 검사 사위를 얻으며, 재벌가의 사위가 되기를 힘씁니다. 기자라 불리는 자들 역시 주류사회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주류집단의 거짓말을 아무 죄책감 없이 받아쓰는 것입니다.
비정상적인 사회에서는 힘과 권력이 지성과 교양을 무력화시키고 상식과 도덕을 짓밟습니다. 힘이 상식이고 권력이 도덕이 되는 것입니다. 교양과 지성 없이 오직 힘의 논리로, 성공 이데올로기로 성장한 자들이 한 사회와 국가를 장악하면 상식과 도덕이 훼손되고 질서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대의(大義)를 헌신짝처럼 버려 버립니다. 을사오적이라 불리는,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에게 주류 의식이 그러했습니다. 조선의 무능과 그로 인한 망국의 그림자를 보았고 한반도에서 일제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보았던 것입니다. 무능하고 힘없는 조국을 지키기 위한 대의(大義)보다 나만을 위해 힘 있는 주류에 편입하고 싶어 했던 자들의 반역이었습니다.
그런데 해방이 되고 국권이 회복된 이후에도 이들 반역자들이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팔아먹고 민족을 배반했던 세력들이 주류가 됐습니다. 해방 이후로 이들은 줄곧 주류로 살아왔습니다. 다만 분단과 냉전 상황을 이용해 친미와 반공으로 자신들의 정체를 애국단체로 위장했을 뿐입니다. 애국 보수의 장막 뒤에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오던 그들이 윤석열 정부 들어 수면으로 부상하여 노골적으로 역사와 진실을 왜곡하고, 국가 이익을 훼손하면서까지 일본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부정의한 자들이 정의롭고 합리적인 척하면서 다시 국가와 민족을 배반하고 적국을 이롭게 하고 있습니다. 이 자들의 태도는 마치 롯의 집에 떼거지로 몰려가서 손님을 강간하겠다고 을러메던 자들 같습니다.
가치관이 상실되고 도덕성이 무너진 자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가를 알지 못합니다. 민족, 정의, 사랑, 우애, 연민, 배려, 희생 같은 고결한 인간의 가치와 사회적 덕목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가치 기준은 오직 힘과 돈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힘은 자신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들을 지지하는 집단과 사회에서 나옵니다. 한 사회에 교양과 상식이 무너지게 되면 이런 자들이 민주주의 제도를 통해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집단(지역)이 만들어집니다. 오늘 한국 사회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건 윤석열 정권, 아니 국민의힘 정권입니다. 이들을 탄생시키고 유지시키고 있는 지역이 TK, PK입니다. 어떤 짓을 해도, 심지어 나라를 팔아먹어도 우리는 국민의힘만 찍어요, 라던 경상도 아줌마의 그 눈물나는 고백에는 경상도가 한국 사회의 주류 집단이라는 인식과 자신도 그 주류 세력의 일원이라는 무의식이 내재돼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옳지만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 방식에 의해 현자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당했습니다. 민주적 절차와 방법은 필요하지만 그것은 절대선이 아닙니다. 민주적 절차와 방식에 의해 TK, PK는 나라와 민족을 일본에 내어주는 친일매국 정권을 탄생시키고 유지시키고 있습니다. 민주적 절차는 옳지만 그 절차에 무지(無知)와 그로 인한 신념이 탑승하게 되면, 한 사회와 국가가 몰락할 수 있습니다. “내어 놓아라, 우리가 그들을 강간하리라.”고 외치던 소돔의 주류 세력처럼 자신들이 국가와 민족 앞에 얼마나 뻔뻔한 짓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나라는 윤석열과 국민의힘을 지지하는주류라고 자처하는 자들 때문에 이 나라가 멸망하는 소돔과 고모라가 되어 버렸습니다.
“내어 놓아라, 우리가 그들을 강간하리라”란 말이 이 정부의 무지하고 염치도 없는 친일 관료들에 의해 다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벌이는 일들은 이 땅의 주류라고 자처하는 서울법대, 검사, 언론, 영남 들이 벌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강간 행위입니다. 지금 윤석열과 그의 관료들이 우리에게 뻔뻔하게 던지는 외침은 이렇습니다.
민주주의를 내어 놓아라, 우리가 강간하리라.
나라를 내어 놓아라, 우리가 강간하리라.
정의와 진실을 내어 놓아라, 우리가 강간하리라.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