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대령,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께 가는 예수의 길 월례미사-박정훈 대령 인사말 전문

2024-08-05     가톨릭일꾼

안녕하세요, 스테파노 박정훈 대령입니다. ‘박정훈 대령의 고뇌와 향기, 그리고 사건의 진실’이라는 오늘 행사의 제목을 보면서, 사건의 진실이나 향기는 잘 모르겠으나, 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제 고뇌에 대한 것입니다.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보면 작년 오늘 이 시간에 국방부 검찰단이 제 휴대폰을 압수하고, 제 사무실 수색하고, 이어서 첫 조사를 받게 된 날입니다. 굉장히 긴박하게 돌아간 날이죠. 잘 알다시피 저를 집단항명의 수괴라는 무시무시한 혐의를 씌웠는데, 그게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이 시간까지 제가 끊임없이 지니고 왔던 마음 중의 하나는 고 채수근 상병의 시신을 보면서 다짐하고 느낀 것입니다. 이 병사에 대한 죽음에 대한 태도의 문제인데요, 저는 채수근 상병의 시신 앞에서 오열하는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시신이 물속에 오래 있어서 상처가 많이 나 있었는데 얼굴에 진물도 많이 생겼습니다. 영안실에서 부친이 채상병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닦는 걸 지켜보았는데, 사실 수사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걸 제지해야 합니다. 현장을 잘 보존해야만 사건을 조사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차마 그렇게 제지할 수 없었습니다. 일계급 특진해서 말이 상병이지, 채수근 상병은 사실 일병이었고, 자대에 배치받은지 채 2-3개월이 안 됩니다. 언론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채수근 상병은 원래 아토피가 있어서 물속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그래서 물밖에 있다가 선임들이 물에서 수색작업 하는 걸 보니까 후임 입장에서 차마 물밖에 있을 수 없어 들어갔다가 참사를 당한 것입니다.

 

저는 작년 7월 31일 이 사건에 대해 해병대 사령관에게서 대통령이 격노하고 개입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절차대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해병대 사령관에게 2박 3일동안 수차례 건의드렸습니다. 이 사건은 한 병사의 죽음이지만 이걸 그렇게 가볍게 넘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혹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냥 손잡고 수색작업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고, 정말 남 이야기하듯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도 국방 관련해 책임자로 계신 분인데 그렇게 말해선 안 됩니다. 최근 언론에서 들어보니 군인은 언제든지 군말없이 죽도록 훈련된 존재라고 말한 사람도 잇는데, 과연 자기 자식이 그런 일을 당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가 들어도 경악스러운 말입니다. 군에서 매년에 병사들이 100명 넘게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중 70-80명은 자살이겠지만, 사고로 죽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면 이런 병사들의 죽음에 대하여 과연 우리 지휘관이라든지 또한 수사라인에서 정말 자기 자식의 문제처럼 생각하고 무게감을 느끼고 수사를 해왔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채수근 상병의 시신을 보면서 정말 이 죽음이 헛되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생때같은 자식의 죽음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구명조끼 해봐야 몇만 원 하는데... 이유여하를 떠나서 실종자가 생긴 마당에 그 물 속으로 들어가라고 했다면, 그 근처에서 수색작업을 한다면 최소한 구명조끼와 로프 등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게 기본 상식인데, 그런 것을 전혀 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했으니, 부모 입장에서는 뭐라 말을 할 수없이 억장이 무너질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죽음의 진실이 뭔지, 왜 구명조끼도 입지 않고 병사들이 물속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누가 그런 지시를 했는지, 누가 책임이 있는지 제대로 규명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었습니다.

저희 부하들하고 열흘 가까이 밤낮없이 열심히 수사를 하고, 저희가 수사종결권이 있는 것은 아니기에 강제수사는 할 수 없었지만, 이 정도 해서 과실치사에 혐의가 있다고 해서 1사단장을 포함해 8명을 혐의가 있으니 경찰에 넘겨서 정식으로 수사를 받게 하면 좋겠다 결론을 내리고 사령관을 통해 국방장관까지 보고가 끝난 내용이었습니다. 법대로 경찰에 넘겨 처리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격노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항상 채수근 상병만 떠올렸습니다. 나중에 정말 하늘나라에 가서 채수근 상병을 만났을 때 당당할 수 있는가만 생각했습니다.

내 양심에 반해서 내 부하들한테 수사서류를 축소하는 등 그런 수사지시를 내가 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해병대 사령관에게도 이런 문제점을 제시하고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건의했던 것입니다. 채수근 상병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힘이 없고 약한 사람들의 생명의 가치나,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들의 생명의 가치나 똑같습니다. 그렇게 모든 생명을 존귀하게 대해야만 우리사회에 인간다워지고, 사람 살아가는 세상이 되지 않을가 생각합니다. 비단 이태원참사나 오송참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 생명을 지닌 자의 죽음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 다시한번 돌이켜봐야 합니다. 제대로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밝혀내야 제2의 사고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지점이 제 고민한 첫번째 고뇌의 지점이다.

두 번째는 작년 이맘 때 제 느낌입니다. 백척간두 절벽에 저 혼자 서있는데 거대한 권력이 저를 아래로 밀어 떨어뜨리려는데, 저는 일 개인으로서 절대권력을 상대로 해서 버틴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망상에 사로잡혔다고, 정신병자라고 비난했는데 그들은 똘똘 뭉쳐서 증거를 조작하고 하는데 나혼자서 어떻게 이 일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 그래서 작년 8월 11일에 KBS ‘사사건건’에 전혀 준비도 없이 나가서 진솔하게 있는 사실 그대로 국민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이 사실을 알고 지지와 응원이 해주어야 내가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게 진실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방송에 나가서도 사실에 대해 이야길 했어요.

지금 일년이 지나 돌이켜 보면, 제가 알고 있는 것을 이미 모두 국민들에게 말씀을 드렸는데, 그 후로도 제가 몰랐던 수많은 통화기록 등 수많이 내용들이 국방부, 대통령실 등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처음엔 진실이 다 드러나기만 하면 제대로 정리가 될 거다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 보면 순진한 생각을 했더군요. 다 드러났어도 어떤 이는 호주 대사로 가고, 어떤 이는 국회의원 공천을 받고, 어떤 이는 진급을 합니다. 이게 뭘까? 왜 이럴까? 궁금합니다. 사람들이 우리 사회애서 그렇게 배우고 자라지 않았는데, 저보다 많이 배우고 저보다 똑똑한 사람들과 우리 사회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계시겠지만 거짓말 하면 안 되고, 바르게 살고, 아주 기본적인 부분에서 잘못된 일이 발생했으면 제대로 압수수색을 하거나 제대로 조사를 하거나 법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부분에 대한 개인적인 고뇌가 최근까지 있었습니다. 제가 해병사령부에서 4킬로미터 떨어진 독립숙영지에서 거의 유배생활 하고 있는데, 어떤 임무를 받은 게 없습니다. 정시에 출근해서 정시에 퇴근할 때까지 아무도 저를 터치해 주는 사람도 없고, 그 생활을 일 년을 보냈는데 그 시간동안 명상을 하기도 하고 기도를 하기도 하고 성경책도 계속 보고 있습니다. 하바꾹 예언서 2장에 보면 그런 글귀가 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구절입니다. 그 다음 구절이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아, 내가 인간적인 마음으로 인간적인 머리로 이게 빨리 정리 안 돼서 조급함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하느님의 시간에 따라서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닐까, 결국 사필귀정으로 잘 정리될 것이다. 내가 그런 믿음을 갖고 꿋꿋하게 잘 버티고 하면 우리 국민들이 잘 정리해 주실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은 저의 고뇌가 우리사회에 생명에 대한 존귀함을 일깨우고, 그리고 이 사건의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어 모든 게 사필귀정으로 가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이것이 저한테는 사명감이고 우리 국민들에게는 당위성의 문제이긴 한데, 그렇게 잘 정리되려면 여기 게신 모든 분들이 이 사건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지지해주셔야 제가 힘이 되고 이 문제가 잘 정리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