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창에 계신 우리 아버지

김선주 칼럼

2024-07-01     김선주

설교자를 긴장키는 순간이 있습니다. 설교 중에 교인이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터치할 때입니다. 그것이 카톡이나 문자를 보내는 거라면 다행이지만, 뭔가를 검색하는 거라면 내 설교를 검증하기 위한 액션일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내 설교에 의심이 갈 만한 내용이 있는가? 인용한 성경 구절의 장절이 틀렸나? 인용하는 성경 인물의 이름이 틀렸나? 보조 자료로 사용한 것을 틀리게 말했나? 등과 같은 생각이 내 혀를 사로잡아버립니다. 원고 없이 하는 나의 설교는 그 때부터 털털거리며 비포장 길을 달리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제 목사의 설교를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설교자는 하나의 직업을 가진 기능인일 뿐 ‘하느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종’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이젠 사람들이 신과 세계에 대한 이해와 정보, 그리고 진리에 대한 접근성이 성직자에게 집중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의 손에 탁월한 검색엔진 하나씩 다 들려있기 때문입니다.

철야와 금식으로 눈물 콧물 다 빼가며 몇 달, 혹은 몇 년을 기도해야 겨우 응답이 오는 하느님과의 관계보다 즉각적으로 응답하는 네이버나 구글에 더 큰 신뢰를 보냅니다. 슐라이어 마허가 말한 ‘절대 의존의 감정’으로 이해되는 하느님을 향한 신앙은 단지 심리학적 위로의 수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주기도문에서처럼 하느님은 하늘에 계신 것이 아니라 검색창 안에 있습니다. 교인들의 무의식 가운데 있는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검색창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하는지도 모릅니다. 네이버나 구글이 하느님(신)의 자리에 이미 알게 모르게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네이버나 구글이 문제가 아닙니다. 더 강력한 신적 능력을 가진 것들이 우리 세계 안으로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AI입니다. 처음 AI가 chat GPT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일상에 들어온 것은 2022년 11월입니다. 이후 1년 반 동안 chat GPT의 발전 속도는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어 버렸습니다.

 

AI 분야를 개척하고 AI 대부라 불리는 제프리 힌턴 박사는 AI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며 작년에 구글의 석학 연구원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는 AI로 인한 위험 중엔 ‘매우 무서운’ 것도 있다고 말합니다. AI가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인간의 예상치 못한 행동까지 학습하게 됨으로써 인류에게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chat GPT 개발사인 오픈 AI와 구글 딥마인드의 전현직 직원 13명은 AI의 심각한 위험을 경고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또 다른 위험한 사태가 우리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류가 전통적으로 믿어왔던 우주관이 되어온 신 관념이 붕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신의 죽음이나 신의 소멸은 결국 인간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AI가 디지털을 기반으로 구축된 시스템이라면 인간은 우주와 자연이 만들어낸 생물학적 시스템입니다. 이 생물학적 시스템의 알고리즘이 하느님(신)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시작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로 시작합니다. ‘말씀’이라고 번역된 이 로고스(Logos)는 철학적 의미보다 물리적 ‘원리’라는 뜻이 더 강했습니다. 사도 요한보다 500년 앞서서 같은 에페소(Ephesus)를 고향으로 살았던 헤라클레이토스의 물리적 원리로서의 로고스 개념을 사도 요한이 가져온 것입니다.

디지털 기반의 AI가 인간의 생활 기반이 되고 윤리규범이 된다는 것은 생물학적 기반의 세계 체제와 하느님(신)의 통치 원리가 붕괴된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이해하는 초월적인 하느님과 내재적인 인간의 심성 관계 구조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결국 AI가 종교를 멸할 것입니다. AI가 인간의 종교를 대체하게 될 것입니다. 터미네이터처럼 강력한 군사적 힘으로 종교를 몰아내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 그렇게 될 것입니다.

동물들은 낯선 것을 처음 마주하면 탐색부터 합니다. 저것이 먹을 수 있는 것인가, 아닌가. 저것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가, 없는가. 아무것도 모르고 덥석 물어버렸다가 오히려 그것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세계의 위험을 알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세계가 무엇 때문에 병들고 파괴되는지 야훼의 통치 원리 안에서 규명하고 그 원리를 회복할 것을 외친 사람들입니다. 기독교는 이 세계에 대해 야훼와 예수의 통치 원리로 세계를 분별하고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이 세계에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험을 위험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그것을 덥석 안아버리고 있습니다.

여름방학 시즌을 통해 여러 교회와 다양한 기독교 단체에서 수련회와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 예상대로 ‘chat GPT를 이용한~~’으로 시작하는 여러 개의 세미나 타이틀이 눈에 띕니다. chat GPT가 무엇인가 신학적으로 정의하기도 전에 그것을 활용할 방안을 발 빠르게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씁쓸합니다. 교계 그 어디에서도 그것을 신학적으로 규명하고 정의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부 신학교에서 ‘chat GPT를 활용한’ 목회방법론, 설교문 작성 방법, 전도 방법, 성경공부 방법, 기독교 교육 같은 강좌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봅니다.

어느 한곳에서도 도대체 그것이 인간과 미래에 어떤 일을 할 것이며, 우리의 신앙 기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우리는 종교적으로 그러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아무도 묻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작년 9월에 한 목회자 그룹에서 무식한 제가 이 문제를 가지고 두어 시간 떠든 적이 있습니다. 책 몇 권 읽고 여기저기 떠도는 자료들 주워 들은 걸로 신학적으로 이해하고 정의하기에 내가 너무 무식했지만 무식한 소리라도 떠들어야만 했습니다.

정말로 적그리스도가 출현한다면 AI가 아닐까까 합니다.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