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표 날리는 교회 보다는...
김광남 칼럼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를 읽었다. 작년에 그의 대표작 <백년의 고독>을 읽다가 포기했는데 이번 작품은 중편이라서 도전해 봤다.
작품은 콜롬비아 내전 참전용사인 가난한 퇴역군인 대령이 "정부가 약속했던, 그러나 오지 않는 연금"을 기다리며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대령 부부는 굶주림과 명예 사이에서 갈등한다. 삶에 지친 늙은 아내는 대령이 헛된 꿈을 꾸며 산다고 비난하면서도 끝까지 그의 곁을 지킨다. 대령은 아내의 비난과 핀잔 속에서도 '연금 통지서'가 오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연금 지급 결정권을 가진 그 누구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는다.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이 소설의 모티브를 한국전에 참전했던 콜롬비아 참전용사들이 전쟁이 끝나 귀국할 때 정부가 자기들에 대해 굉장한 보상을 할 거라고 기대했으나 결국 아무것도 받지 못해 자신들이 받은 훈장을 저당잡혀 먹고살아야 했던 비참한 현실에서 얻어왔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사회소설 혹은 정치소설인 셈이다.
그러나 나는 습관처럼 이 작품을 기독교적으로 읽었다. 역사상 교회는 끊임없이 신자들에게 무언가 엄청난 것을 약속하면서 희망을 부추겼다. 하지만 그 약속을 믿고 기다렸던 수많은 이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약속에 대한 믿음 때문에 실제로 굉장한 무언가를 얻은 이들이 간혹 있다고는 하나, 대개는 자기들의 힘으로 죽어라 일해서 겨우 먹고살아 왔다. 게다가 그들이 믿음 때문에 얻었다고 고백하는 것 대부분은 교회 밖 사람들이 믿음 없이도 얻었던 것들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런 현실을 본다면 그동안 교회는 숱하게 공수표를 날려온 셈이다.
소설 말미에 대령의 아내는 여전히 연금 통지서가 오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는 대령에게 "그때까지 우리는 뭘 먹고 살죠?"라고 묻는다. 아내의 질문에 대령이 답한다. "똥." 그는 똥을 먹으면서라도 희망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이 답은 그가 희망을 놓지 않는 대상이 똥이라는 지적이기도 하다.
순전하고 끈질긴 신앙이 어느날 갑자기 우리에게 무언가 굉장한 것을 이뤄주리라고 여기는 것은 환상이다. 잘 드러나지는 않으나 소설 속에서 늙은 대령과 그의 부인이 그나마 죽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곁에 있는 찌질한, 그러나 그의 고통에 이모저모로 연대하는 이웃들 때문이었다. 헛됨, 고독, 연대... 짧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김광남
종교서적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작가이자 번역자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교회 민주주의: 예인교회 이야기>, 옮긴 책으로는 <십자가에서 세상을 향하여: 본회퍼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