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을 얻을 때까지 기다리며, 밥을 먹으며

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2022-07-03     서영남
사진=서영남

지난 4월 어느 날입니다. 오전에 손님들에게 도시락꾸러미를 나누고 있는데 새로운 손님이 왔습니다. 새 손님은 며칠 전부터 동인천역 근처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름과 나이 그리고 어디에서 주로 노숙을 하는 지 물었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구청에서 공무원이 나와서 민들레국수집에서 식사를 하거나 도시락을 받아가는 사람들의 명단을 기록하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휴대전화도 없습니다. 주거지도 없습니다. 별 소용이 없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명단을 작성했습니다. 본래 민들레국수집에서는 노숙을 하시는지? 어떻게 오셨는지 물어볼 뿐입니다. 이름이나 나이는 어느 정도 친해진 다음에 손님이 마음 상하지 않게 슬쩍 물어봅니다. 지난 4월 중순부터 도시락 나누기를 중단하고 실내에서 식사를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다시 손님들 신원 확인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동인천역 근처에서 노숙하는 새 손님이 중고라도 좋다면서 안전화를 얻을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신발 크기는 265라고 합니다. 막노동이라도 나가고 싶은 데 안전화를 구할 방법이 없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손님의 이름은 양권식(가명)입니다. 1957년 11월에 수봉공원 아래 독쟁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여동생이 하나 있고, 결혼은 하지 못했습니다.

마흔 중반 즈음에 함께 살던 어머니가 치매에 거렸습니다. 연탄배달 하면서 모친을 돌보다가 십여 년 쯤에는 치매가 심해져서 어느 교회가 운영하는 요양원에 들어가셨습니다. 모친이 돌아가시기 1년 전 쯤 지방에 내려가서 막노동을 하면서 돈을 좀 모았는데 모친이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느라 다 썼습니다. 아는 분의 도움으로 도로 청소원으로 비정규직으로 취직했는데 적응이 어려웠다 합니다. 결국 퇴직했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사람과 부딪혀 치료 합의를 위해 퇴직금마저 다 썼다고 합니다. 

처자식도 없고 어머니도 돌아가셔서 그만 사는 것이 재미없었다고 합니다. 은행에 못 갚은 돈이 천만 원 정도로 신용불량자가 되었답니다. 사채는 없답니다. 여관에서 지내다가 돈이 다 떨어져서  석 달 전부터 동인천역 근처 지하도에서 지낸다고 합니다. 오전은 민들레국수집에 와서 밥을 먹고, 오후에는 빈들의 교회에서 저녁을 먹고 밤에는 동인천역 지하도에서 잔다고 합니다. 주량은 소주 한 병 정도인데 돈이 없으니 얻어 마시는 신세라고 합니다. 담배는 십여 년 전에 끊었다고 합니다. 저축한 돈도 재산도 없습니다. 연금이라고는 오는 11월이 되면 만65세가 되니 그때 기초연금은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양권식(가명)님께 제안을 했습니다. 주소지를 마련해야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할 수 있는데 요즘은 주소지로 여인숙도 가능하니까 방세를 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다행스럽게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 방세를 갚을 수 있고 안 된다고 해도 또 11월에 기초연금을 받으면 조금씩 갚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고맙다고 합니다. 만 원을 드리면서 오늘은 찜질방에서 자고 내일 오전에 민들레국수집에 식사하러 올 때 저의 제안에 대해 답을 해 달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입니다. 양권식(가명)님이 오시려나 기다렸지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더 기다려야 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노숙하는 우리 손님들은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합니다. 노숙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어느 누구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며칠 굶고 지쳐서 대합실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있을 때 천사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밥 사주고 술 사주면서 취직까지 시켜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구렁텅이에 밀어버립니다. 그렇게 당한 후에야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 지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양권식(가명)님이 민들레국수집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제는 찜질방에서 느긋하게 쉬다가 오후에 민들레국수집에 온 덕분에 저를 만나지 못하고 오늘은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제의 약속대로 하겠다고 합니다. 여인숙에 방을 얻고 안전화가 마련되면 막노동을 나갈 것이라고 합니다. 여인숙을 구하려면 이삼 일 찾아봐야합니다. 요즘은 여인숙이 문 닫은 곳이 있어서 여인숙 방이 자리가 모자란다 합니다. 

방을 얻을 때까지 기다리기야 하겠지만 당장 빨랫감이 걱정이라고 합니다. 민들레희망센터에서 세탁해서 말려 놓을테니까 빨랫감을 내 어 놓도록 했습니다. 배낭이 홀쭉해졌습니다. 노숙하면서 제일 힘든 것이 빨래입니다. 여인숙 방 얻기까지는 찜질방에서 며칠 지내기로 했습니다. 식사는 쉬는 날인 목요일과 금요일에도 민들레 식구들과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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