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 사상에 뿌리박은 여성사제 금지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39
여성사제 문제와 관련해,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제자직’을 요구하는 여성신학자 엘리사벳 피오렌자, 그리고 <예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라는 책으로 한국에서 유명해진 평신도신학자 게리 윌스는 그동안 신랄한 어조로 교황청의 여성사제 금지의 이유에 대해 공박해 왔다. 이들은 초기교회의 평등주의 관점에서 성직주의와 사제직분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여성사제에 대한 교황청의 반대 입장은 바오로 6세 교종이 영국 성공회의 여성사제 임명을 반박하면서 제시했던 배제사유에서 아직까지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앙교리성에서 1976년에 발표한 <명백한 징표 가운데서>라는 문헌에선 “그리스도께서 원래 남자만 사도로 임명했기 때문에 교회는 여성을 서품할 권한이 없다”고 말한다. 예수와 열두 사도가 모두 남성들이었기 때문에 모든 사제는 남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모든 사도는 결혼을 했으며 모두 다 유대인이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복음서 시대의 상황을 우리 시대에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면 정작 베드로나 바오로 등 사도들 자신도 본래 ‘사제’가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요한 바오로 2세 교종 역시 1994년에 발표한 <남성에게만 유보된 사제 서품에 관한 교서>에서 “교회는 여하간 여성들에게 사제서품을 줄 수 있는 권한이 전혀 없으며, 교회 신자들 모두는 이러한 판결을 명확하게 받아야 들여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예수가 남성이었고, 사도들이 남성이었다는 사실은 여성의 사제직 배제 근거로는 아주 취약하다. 오히려 수세기에 걸쳐 여성을 사제직에서 배제해야 하는 이유로 제시되어 온 것은 먼저 여성은 ‘열등한 존재’여서 이 존엄한 직분을 담당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은 예식 수행에 걸맞지 않는 ‘불결함’ 때문에 제단에 다가가서는 안 된다고 한다. 즉, 여성사제 금지는 여성혐오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오로지 남성만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까닭에 신성한 사제직분은 남성들만 받을 수 있다고 했으며, 둔스 스코투스는 여성은 인류를 타락하게 만든 하와의 후계자이므로 인간의 구원을 담당하는 공직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이러한 생각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이어받은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태의 형식요소가 남성씨앗인데, 자궁의 토양이 불결한 경우에 어머니를 닮은 남성을 낳거나 아버지를 닮은 여성을 낳거나 또는 어머니를 닮은 여성을 낳는다고 보았다. 즉, 여성은 수태될 당시에 이미 ‘실패한 남성’이거나 하나의 ‘기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은 남성보다 허약하게 태어나며 이성과 미덕과 기강 면에서 떨어지며 불안정하고 변덕스럽고 쉽사리 격정에 빠져들고 자신과 타인을 통제하는 능력에서 남성에게 뒤진다고 말한다.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여자는 “악마가 들어오는 통로”라고 말했다.
그런데 더 일반적인 것은 여성의 불결함에 호소하는 것이다. 도미니코 수도회 신학자였던 이브 콩가르(Yves Congar) 추기경은 레위인이나 유대교 사제를 뜻하는 사제, 제사장(hiereus)이라는 말은 신약성서에 30번 나오는데, 대사제, 대제사장(arhiereus)이라는 낱말은 130번 정도 나온다고 한다. 여기서 ‘대사제’라는 말은 그리스도나 신자 모두를 부를 때만 사용했다.
복음서에선 구체적인 개인을 ‘사제’로 부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의 성전사제직을 모방하면서 이와 관련된 예식상의 규제와 금기들도 모방하였다. 예수가 복음서에서 그리도 경계하던 정결법을 교회로 고스란히 되가져온 것이다.
가톨릭 사제들은 희생 제사를 드리는 유대인 사제들처럼 성찬식을 행하기 전에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하지 못했으며, 이윽고 아예 아내를 두지 못하게 금지하였고, 이들이 행하는 성찬식은 일상과 아주 다른 비밀제의처럼 바뀌었다. 제단 칸막이는 평신도들의 시야를 가로막고, 성직자용 라틴어는 다른 신자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한 언어가 되었다. 축성을 할 때 사용하는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이 없는 자는 사제가 될 수 없었으며, 평신도는 혀를 빼고는 신체의 어느 부위로도 축성된 면병(성체)를 만질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놀라운’ 믿음 때문에 동정녀인 수녀들이 손으로 면병을 만질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유대교처럼 여성은 월경 때문에 예식상 불결한 존재이므로 축성된 성체를 만질 수 없다는 내용을 9세기 바젤의 하이토 주교는 교회법령 안에 포함시켰다.
“누구나 여자가 제단에 접근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하느님께 봉헌된 여자(수녀)라도 어떤 종류의 제단 예식에도 개입해서는 안 된다. 만일 제대포를 세탁해야 할 경우 성직자가 그것을 걷어 내서 제단 난간 너머로 건네주어야 하며, 돌려받을 때도 같은 방법으로 해야 한다. 봉헌 예물 역시 마찬가지로 여자가 운반해 올 경우 사제가 제단 난간에서 받아서 제단으로 가져 갈 것이다.”
여성은 중세 대성당에서 성소 뒤에 자리 잡고 있던 성가대석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고, 그래서 성가대는 모두 남성만으로 구성하는 게 원칙이었다. 그 결과 소프라노는 남자를 거세하는 방법으로 얻어냈다. 바티칸 성가대는 이 점에서 유명했는데, 남자는 불구라도 여자보다는 덜 불결했던 것이다. 그러니 여성의 사제서품이란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복음이나 초기교회의 전통과 동떨어진 것이다. 우리는 신약성경 안에서 한결 맑은 세계를 호흡하게 된다. 바울로 사도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 인용한 ‘세례찬가’에선 남성과 여성의 온갖 불평등을 배척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 4,26-28)
[출처]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한상봉, 다섯수레, 2014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