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토론과 이견이 금지된 사회인가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35
2013년 3월 21일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는 1970년대 유신 체제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선포한 대통령 긴급조치 1호, 2호, 9호가 모두 위헌이라고 뒤늦게 판결했다. 헌법재판소는 특히 유신헌법의 개정이나 폐지 논의 자체를 금지한 긴급조치 1호와 9호에 대해 “헌법의 개정과 폐지는 주권자인 국민이 보유하는 가장 기본적 권리”라며 “비판 자체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려는 공권력의 행사나 규범의 제정은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게 시민사회의 법 감정이다.
1974년에 선포된 긴급조치 1호는 유신헌법을 부정·반대·왜곡·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또한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발의·제안·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이 조치를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속·압수·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2조는 이런 범죄의 관할·심판권을 비상군법회의에 주었다. 한편 9조에는 국회의원이 직무상 국회에서 행한 발언은 처벌하지 않지만, 이 발언을 방송 보도나 기타 방법으로 공연히 전파하면 처벌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실제 한국 천주교 원주교구의 지학순 주교는 유신헌법의 무효를 주장하는 ‘양심선언’을 발표해 1974년에 15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가톨릭교회의 사정도 그동안 유신정권과 다르지 않았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윌리엄 조셉 레바다 추기경을 통해 2012년 7월 15일 아동 성추행 등 교회법의 위반 사안을 다루는 <더욱 중대한 범죄에 관한 규범(Norme de gravioribus delictis)>을 발표했다. 여기에서 신앙교리성은 아동 성추행 혐의를 받은 사제를 별도의 교회재판 없이 바로 환속시키도록 교황에게 요청할 권리를 갖는다. 아울러 이 규범은 여성 사제 서품을 ‘더욱 중대한 범죄’에 포함시켜, 지역교회에서 여성을 사제로 서품하는 해당 성직자는 성직을 박탈하며, 대상 여성은 ‘자동 파문’에 처해진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레오나르도 보프는 <교회, 권력과 은총>에서, 교회 안에서 사제의 선택적 독신제와 여성 사제, 낙태와 피임 문제, 신학적 쟁점 등에 관한 자유로운 의사 표현의 자유가 가톨릭교회 안에서 심각하게 제한되어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보프는 “교계 제도는 국가의 검열에 강력하게 반발하면서도 교회의 언론 수단에는 사사건건 통제를 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적어도 교회 이슈에 학문적 토론의 장은 열어 주고, 이견을 가질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그동안 교도권의 해석과 다른 의견이나 새롭게 제기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신학적 가설에 대해 격렬히 반발하며 단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신학자들의 경우에는 침묵령을 내리거나 출판을 불허하고 이단 판정을 내리기도 한다. 이를 두고 보프는 “많은 주교들이 자신들의 무분별한 지식에 바탕을 둔 ‘권위주의’로 자신들의 무지를 은폐하고 있으며,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L’Osservatore Romano)를 통해 교황청 입장만 단조롭게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은 교회가 교회의 이단자들을 처벌할 정치적-물리적 수단이 없지만, 기본적인 처리 방법은 변한 것이 없다면서 “육체적 고문은 폐지되었으나 정신적 고문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청에서 문제 삼은 신학이나 신학자의 경우에는 절차적 정당성이나 투명성, 자기 해명의 권리도 없이 심문이 무한정 지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反)인권적이라고 보프는 말한다. 이 지루한 조사와 가혹한 심문 과정에서 몇몇 신학자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교회에서 외면당한 채 외로움과 심리적 불안을 경험하고, 끝내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1971년 1월 15일 제정한 <교리검토규칙>은 철저히 인권을 무시한다. 피고에게 전혀 통고하지 않은 채 조사를 시작하고, 신앙교리성의 입장이 정해지면 피고에게 통고해 질문에 답할 것을 요구한다. 피고는 기소 이유에 대한 구체적인 사유도 절차도 신앙교리성의 다양한 입장도 모른 채 심문에 응하게 된다. 변호인이 선임되지만, 피고는 변호인의 이름도 알 수 없고, 변호인을 선택할 권리도 없다.
때로 이러한 비밀스러운 종교재판에서 원고와 변호인과 재판관이 같은 사람인 경우도 있다. 여기서 피고가 할 수 있는 것은 신앙교리성의 권고에 응하는 것뿐이다. 처벌 내용을 담은 단죄 서한은 이미 작성되어 있으며, 죄명은 “신학적으로 모호하며 위험하고 오류이며 가톨릭 교리와 신앙의 규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명시된다.
[출처]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한상봉, 다섯수레, 2014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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