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 낯선 분] 율법은 모세에게서, 은총과 진리는 예수에게서
카나의 혼인 잔치와 예수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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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포도주로 바뀌었다. 더욱이 엄청난 양의 물이 포도주로 바뀌었다. 모두 두세 동이들인 여섯 개의 물독에 채워진 물의 양은 어림잡아 700리터에 이른다. 포도주가 떨어져 파국의 위기에 처한 혼인잔치에 예수는 놀라운 선물을 제공하신다. 예수의 이 선물로 말미암아 혼인잔치의 기쁨은 계속될 수 있었다. 파국의 위기는 잔치의 기쁨으로 바뀌게 되었다. 더욱이 예수의 선물은 양적으로 엄청나게 풍부하다. 이렇게 본문에서 포도주가 떨어져 생긴 문제는 예수에 의해 해결되었다.
그렇다면 물에서 포도주로 바뀐 것의 질은 어떠했을까? 포도주의 질은 우리 본문의 10절에서 과방장에 의해 확인된다.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두셨군요.”(10절). 과방장은 그 포도주의 출처를 알지 못했지만, 그것이 좋은 포도주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이처럼 예수가 위기에 처한 혼인잔치를 위해 제공하신 포도주라는 선물은 양적으로 풍부할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양질의 것, 곧 좋은 것이었다. 포도주 때문에 생긴 혼인잔치의 위기는 예수에 의해 해결되었다. 풍부하고 좋은 새 포도주가 예수에 의해 선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④ 결과
이제 우리 본문의 마지막 단계인 결과 부분을 살펴보자. 먼저 본문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예수의 일을 “표징”이라고 표현한다. 더욱이 그것은 요한 복음서에서 첫 번째 표징으로 언급된다. 이 대목에서 복음서의 저자는 예수가 행하신 놀라운 일을 단순히 기적이라 하지 않고 표징이라 한다. 즉 예수의 그 일이 다른 어떤 실재를 가리키는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일이 말하고자하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문은 그 표징을 통해 예수의 영광이 드러났고, 그 표징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이 그분을 믿게 되었다고 한다(11절). 여기서 우리는 표징, 영광 그리고 믿음이 밀접히 연결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예수의 표징, 위기에 처한 혼인잔치를 구한 그분의 표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표징이 가리키는 의미의 세계는 무엇인가? 먼저 우리는 포도주가 가지는 신학적인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약성경에서 포도주는 메시아 시대의 선물을 상징한다. “보라, 그 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산에서 포도주가 흘러내리고 모든 언덕에서 새 포도주가 흘러넘치리라.”(아모 9,13). 그리고 혼인잔치는 메시아 시대의 잔치를 가리킨다(이사 54,4-8; 62,4-5).
우리 본문에서 유다인의 정결례에 쓰는 물독의 물이 옛 계약을 상징한다면, 그 물이 포도주로 바뀐 것은 새로운 메시아 시대의 놀라운 선물을 가리킨다. 풍부하고 양질의 포도주가 상징하듯이 이 메시아의 선물은 풍요롭고 좋은 것이다. 그리고 메시아는 파국의 위기에 처한 잔치의 기쁨을 되살린다. 따라서 물이 포도주로 변화된 사건은 예수가 메시아이시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메시아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가리키는 진정한 의미의 표징인 것이다. 이 표징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의 외아드님이시고 메시아이신 예수의 영광이 드러났다. 그리고 이 표징은 예수를 받아들이는 믿음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
본문 안에서의 변화
우리 본문 안에서 일어난 변화는 파국의 위기에 처한 혼인잔치가 다시 기쁨의 잔치가 된 것이다. 혼인잔치에 문제가 발생한 것은 포도주가 떨어졌기 때문인데,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서 새로운 포도주를 선물로 주심으로써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 이 변화의 중심에 예수가 계신다. 그분이 이 변화를 주도하신다. 예수는 변화를 위한 능력이 있으신 분이고 실제로 그 변화를 일으키셨다.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물독의 물은 옛 계약을 가리키고 새로운 포도주는 메시아 시대의 선물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 안에서의 진정한 변화는 옛 계약에서 새 계약으로의 변화, 옛 시대에서 새로운 시대로의 변화, 메시아를 기다리던 시대에서 메시아 현존의 시대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 변화의 중심에 예수가 계신다. 왜냐하면 메시아이신 예수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의 잔치가 열렸기 때문이다.
우리 본문 안에서의 변화와 대조는 다음의 구절과 일맥상통한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요한 1,17). 즉 물독의 물이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율법을 가리킨다면, 새로운 포도주는 메시아 예수를 통하여 온 은총과 진리를 의미한다.
송창현(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